이달호 / 수원화성박물관장

광교산의 유래

광교산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오랜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은 백두산을 조종의 산으로 숭상하여 왔으며 백두산부터 지리산까지를 하나의 산줄기로 보고 백두대간이라고 일러왔다.

수원을 품고 있는 광교산

수원을 품고 있는 광교산

그러나 일제는 조선민족을 영원히 말살하기 위해 우리가 예부터 써오던 백두대간이라는 말 자체를 없애버렸으며 우리나라 산줄기체계를 그릇되게 왜곡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모든 산들과 골들, 평야들은 조종의 산인 백두산과 잇닿아 있다.
광교산(光敎山)이란 명칭은 1530년(중종 25)에 증보하여 완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처음 등장한다. 광교산은 광교산(光嶠山), 광악산(光岳山), 광옥산(光獄山) 등으로 불렸다. 광교산으로 이름이 굳어진 것은 「수원부지도」(1872년)에 있는 아래 내용 때문이었다.

"고려 야사에 의하면 광교산의 원래 이름은 광옥산이었는데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광교산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928년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을 정벌하고 돌아가는 길에 광옥산 행궁에서 머물면서 군사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있었는데, 이 산에서 광채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이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주는 산이라 하여 '광교(光敎)'라고 하였다."

품어 아우르는 범위

그렇다면 광교산이 아우르는 범위는 어떠한가. 광교산 줄기와 여기서 발원한 물줄기를 살펴보자. 광교산은 백운산과는 구별된다. 그렇지만 한남정맥의 같은 줄기에 놓여있어 넓은 의미로는 의왕시의 백운산, 바라산 등이 모두 광교산의 줄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먼저 수원의 산줄기의 갈래와 물 흐름을 살펴보면 광교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시루봉을 중심으로 비로봉, 형제봉이 흘러내려 영통의 청명산으로 이어지고 이 줄기가 수원의 동쪽을 감싸 안는다. 서쪽으로는 지지대고개 방향에서 칠보산으로, 남쪽으로는 고금산 그리고 화산이 수원을 둘러싸고 있다.

물줄기는 지지대고개부터 동쪽으로 뻗어간 산줄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왕송저수지를 경유해서 황구지천을 만들고, 파장저수지 방향과 일월저수지, 만석거(일왕저수지) 들의 물줄기가 모여 서호를 경유해서 서호천을 만들고, 광교산 남쪽으로 광교저수지를 경유해서 수원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수원천을 만들고, 광교산 동쪽 자락의 물을 모아 신대저수지와 원천저수지를 경유해서 원천천을 만든다. 이 네 개의 물줄기는 수원시 대황교동과 화성시 태안읍 황계리 언저리에서 황구지천으로 합쳐지고, 다시 진위천으로 흡수되고 아산만 입구에서 안성천으로 흡수되어 서해로 흘러든다.
한편 용인지역은 광교산과 백운산에서 발원한 시냇물이 낙생저수지를 경유하여 동막천이 되고, 성복천이 동막천을 만나 탄천으로, 그리고 한강으로 다시 서해로 흘러든다.
또한 의왕지역은 백운산에서 발원되는 물줄기가 맑은내를 만들고 백운저수지를 경유한 물줄기는 학의천을 만든다. 이 두 물줄기는 안양천으로 해서 한강으로 다시 서해로 흘러든다.

따라서 광교산은 한강과 안성천의 분수령으로서의 위치에 서게 된다. 이와 같이 우리의 지리개념은 산과 강을 하나로 인식, 백두산부터 지리산까지 남북으로 국토의 등뼈를 그려 넣고, 1개의 정간과 13개의 정맥 사이에 강이 흐르는 자연친화적 개념이다.

광교산과 관련한 인물들

광교산에서 활동하거나 관련 인물들은 어떠한 사람들이 있었는가. 병자호란 당시 최초의 승장 김준룡 장군의 승첩지로 광교산은 매우 뜻깊은 장소이다. 또 의병뿐만 아니라 도적질이나 '변혁을 꿈꾸는 대도(大盜)' 들에게도 광교산은 웅거하고 일을 도모할만한 곳이었다. 청계산과 관악산, 칠장산과 속리산 어디로든 연락과 도망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유격전을 펼치기 좋은 산세인 때문이다.

광교산의 유적으로는 서봉사지, 창성사지, 89암자 같은 불교유적이 있다. 또한 그를 뒷받침하는 고려시대 비석으로는 창성사진각국사탑비와 서봉사현오국사비 등이 있다. 이는 고려시대부터 이곳에서 선조들이 번성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적들이다. 또한 조선 중종 대 문신 조광조의 묘와 심곡서원, 이고 선생 묘역, 대마도 정벌의 선봉장 이종무 장군 묘 등이 있다.

이후 정조대에 와서는 광교산이 농업 진흥을 위한 물줄기로 이용되는데 관길야, 대유평, 서둔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리고 정확한 위치를 찾아 복원해야 할 사직단, 아직도 우리의 마음을 넉넉하게 해주는 수원팔경 중의 하나로 꼽히는 광교적설(光敎積雪) 등은 앞으로 우리가 계속해서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다.
광교산의 산줄기와 물줄기를 올바로 보전하고 이곳의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역사적 사실들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은 우리 선조들이 지녔던 산과 강을 하나로 인식하는 자연친화적 지리개념을 지켜나가는 길인 것이다.

광교저수지

광교저수지

사방댐

사방댐

출처 : 수원문화원 - 수원을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