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희 / 수원박물관 학예연구사

토기는 어떻게 해서 만들게 되었나?

토기는 점토를 물과 함께 개어 빚은 다음 불에 구워 만든 그릇이다. 돌을 깨뜨려 만든 도구를 사용했던 시기인 구석기시대가 지나고 신석기시대부터 사용되었다. 구석기시대에는 수렵이나 채집을 하며 여러 지역을 이동하며 생활하였는데 농사를 바탕으로 정착 생활을 하면서 식량 저장과 식수 담아둘 그릇이 필요해지며 출현한 것이다.

처음에는 자연적으로 생긴 구덩이나 풀 등으로 만든 바구니, 쉽게 구하고 다듬기 쉬운 목기 등을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점차 흙을 반죽하여 일정한 형태를 만들어 말려서 쓰다가 우연한 기회에 불에 타서 단단해진 것을 보고 토기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보통 토기는 500~1000℃ 이하에서 구워진 것을 말하며 그 이상의 온도에서 구워진 것은 도자기(陶磁器)라고 부른다. 토기는 만들기 쉬운 반면에 부서지거나 깨지기도 쉬웠기 때문에 요즘 고고학자들이 문화재를 발굴을 하는 유적지에서 가장 많이 출토되는 유물이다.

각 시대별로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 민무늬토기(無文土器), 타날문토기(打捺文土器), 삼국시대토기(三國時代土器), 통일신라토기(統一新羅土器) 등이 대표적인 토기이다.

여기산_선사유적_출토_민무늬토기

여기산_선사유적_출토_민무늬토기

중도식 토기란 무엇일까?

중도식 토기란 한국 고고학계에서 중도 유적에서 출토된 일정한 형태의 토기를 기준 삼아 부르는 말이다. 중도 유적에서는 좁고 편평한 바닥과 배가 갸름하게 부른 달걀 모양의 몸체 그리고 밖으로 벌어진 아가리를 가진 항아리가 많이 출토되었다. 따라서 이 형태의 토기가 유적지에서 출토되느냐를 통해 역사를 연대순으로 엮을 수 있다. 지금까지의 유적지 발굴 성과를 분석해보니 우리나라 중․남부지역의 초기철기(B.C 300년경~B.C 100년경), 원삼국시대(B.C 100년경~A.D 300년경)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다.

중도 유적은 강원도 춘천시 호반동에 위치하는 초기철기시대 집자리 유적으로 북한강과 소양강이 만나는 곳의 삼각주에 있다. 이곳은 의암 댐 건설 중에 물살이 바뀌어 깎여나가면서 육지에서 떨어져 나와 작은 섬처럼 되었는데, 의암호가 만들어진 후에는 상당 부분이 물에 잠기게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1980~84년까지 연차적으로 초기철기시대의 집자리를, 강원대학교박물관에서는 돌무지무덤을 조사하였다.

보고서만 빨리 나왔어도 '(수원) 서둔동식 토기'로 불렸을 텐데...

수원역에서 안산과 인천방향으로 수인로(42번)를 타고 가다가 서호천을 지나자마자 우측의 농촌진흥청 내로 진입하면 서호와 축만제 서쪽에 해발 100m 정도의 야트막한 야산이 있는데 여기가 바로 경기도기념물 제201호인 여기산 선사유적이다.
여기산 선사유적은 숭실대학교박물관에서 1979년부터 1984년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청동기~원삼국시대 [(B.C 2,000~1,500년경)~A.D 300년경〕의 집자리를 발굴 조사하였다.

여기산 선사유적에서 확인된 집자리는 총 9기로 청동기시대 3기와 원삼국시대 6기 등이었다. 원삼국시대 집자리 내부에서는 온돌(아궁이에서 불을 때 그 불기운으로 방바닥을 덮게 하는 난방 장치) 역사의 시작이라 할 만한 부뚜막이 있는 터널 형태의 화덕자리와 불에 타서 지붕과 벽체를 이룬 구조물의 재료가 그대로 무너진 듯한 흔적이 조사되었다.

그리고 바닥에 볍씨자국이 있는 토기편과 목탄화된 쌀 그리고 화덕시설에서 볏짚의 사용 흔적이 확인되어 당시 벼농사가 성행하였다고 추정되었다. 여기산 주변 일대가 벼농사에 적합한 저지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논농사가 널리 일반화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현재 이 일대에 농촌진흥청 작물시험장이 위치하는 것과 무관치 않을 듯하다.
한편 터널형노지가 확인된 집자리는 원삼국시대 5호 집자리로 중부지역 터널형노지 가운데 정사각형 내지 직사각형 집자리에 시설된 예로는 화성 왕림리유적, 개성 봉동리유적, 가평 현리유적, 화성 소근산성유적, 화성 동탄 석우리 먹실유적 등이 있다.
당시 터널형노지라고 부르는 외줄의 온돌이 설치된 원삼국시대 집자리가 남한에서 발굴된 것이 이 유적에서 처음이었고 고고학계에서 '중도식 토기' 또는 '중도식 무문토기'라고 부르는 토기문화의 실체가 확인된 것도 춘천 중도유적보다 1년 앞서 발굴된 여기산 선사유적이었다.

따라서 보고서만 빨리 나왔어도 현재 한국 고고학계에서 기준 삼아 말하는 '중도식 토기' 또는 '중도식 무문토기' 아니라 '(수원) 서둔동식 토기' 또는 '(수원) 서둔동식 무문토기'라 불렸을 텐데... 늦게 보고되었다는 아쉬움이 크다.
이렇듯 여기산 유적은 고고학계에서 당시의 가옥의 구조를 밝히는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출토된 유물을 통해서 선사시대의 생활상과 논농사의 역사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유적 전체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앞으로 단계별 조사를 실시하여 유적 전체의 양상을 파악하고, 이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은 수원박물관에 전시하여 일반시민들이 우리 시의 선사시대 역사와 문화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길 바란다.

여기산 선사유적 항공사진

여기산 선사유적 항공사진

여기산 유적지

여기산 유적지

출처 : 수원문화원 - 수원을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