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민 / 수원박물관 학예팀장

세계적 문화아이콘 수원갈비

조선후기 상업의 발달과 이에 따른 다양한 인물들을 감칠맛 나게 그린 김주영의 장편소설 『객주(客主)』에는 전국 각지의 이름 짜한 음식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 해박함에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데 경기도의 경우 과천 청참외, 양주 백화암 튀각, 용문사 두릅회와 취쌈, 봉선사 전골, 광주 속댓국, 용인 오이지, 여주 쏘가리탕, 회암사 간장, 장단의 밤떡, 송도의 보쌈김치에 식혜, 그리고 수원의 경우 '용주사 약과'를 꼽고 있다. 용주사는 사도세자와 정조의 원찰로 큰 제사가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수원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수원갈비'를 꼽는다. 수원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문화 아이콘인 것이다.

농진청이 조사·발표한 '한국의 전통향토음식' 에 따르면 경기도 향토음식은 수원갈비를 비롯하여 이천 영양밥, 백암순대, 여주산병, 포천 이동막걸리 등이 있다. 또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대한민국 대표 음식이야기(2009)'에 선정된 경기도 대표음식으로 수원 왕갈비를 비롯하여 안양 삼계탕과 광주 곤지암 소머리국밥, 동두천 떡갈비, 안산 대부도 바지락칼국수, 양평 옥천냉면, 용인 백암순대, 의정부 부대찌개, 이천 쌀밥정식, 포천 이동갈비 등이 있다.

수원은 전국적으로 이름난 갈비의 본 고장이다. 이는 수원 우시장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것이기도 하다. 수원의 우시장은 조선 후기 이래 전국에서 이름난 곳이었고, 특히 일제강점기 전국 3대 우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수원 우시장이 이렇게 유명했던 까닭은 정조의 새 도시 화성의 육성책과 관계가 깊다. 화성을 축성하고 난 뒤 수원을 자립 기반을 갖춘 도시로 육성하기 위하여 둔전(屯田)을 경영하였다. 그리고 둔전에서 농사를 잘 짓도록 농민들에게 종자와 소를 나누어 주었다. 수확기가 되면 수확의 절반을 거둬들이고, 소는 잘 키워 3년에 1마리씩 갚도록 했다. 이에 점차 늘어난 소는 수원의 대표적 상품으로 팔리기 시작하였고, 자연스럽게 수원 우시장이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던 것이다.

1977년 9월 3일 영동 비오는 질척한 거리 진고개, 갈비냉면, 조약돌, 현대화점, 안동식당

1977년 9월 3일 영동 비오는 질척한 거리
진고개, 갈비냉면, 조약돌, 현대화점, 안동식당

1979년 3월 6일 영동시가지 최치과, 수원갈비, 공작다방, 수원옥

1979년 3월 6일 영동시가지 최치과, 수원갈비, 공작다방, 수원옥

수원 우시장, 수원 경제를 이끌다

수원의 명성은 경기남부 일대 패션을 이끌었던 포목상과 우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더욱 커졌다. 소의 거래는 다른 어떤 물품의 거래보다 많은 돈이 오고 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시장의 성황은 수원지역에서 상품 교역이 늘어나는 한 요인이 되었고, 수원은 농업 도시뿐만 아니라 상업도시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수원의 우시장은 19세기 중반 이후 충청도 지역의 소가 값이 좋은 서울 쪽으로 올라오는 경향에 힘입어 더욱 성장하였다. 소들은 남쪽 먼 곳으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따라 서울로 북상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경기남부의 경우 오산에서 소를 팔고 남으면 수원으로 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오산장이 수원장에 비해서 소 값이 싸서 오산장에서 소를 사다가 수원장에 파는 경우도 많았다. 수원 북쪽으로는 이름난 우시장이 없었는데, 조선시대 한양 도성 안에서는 도축을 금지한 탓에 서울 성안에는 우시장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양 이남에서 가장 큰 우시장이 수원 우시장이었기 때문에 수원에서 소를 파는 것이 가장 좋은 값을 받았고, 이후 북쪽으로 갈수록 손해였던 것이다. 따라서 수원 우시장에서 좋은 값으로 어미 소를 팔고 나서 다시 송아지를 사서 1년을 키워 수원에 내다 파는 것이 농민들의 큰 사업이기도 했다.

충청도와 경기남부 지역에서 안성장(2·7일)→ 서정리장(2.7일)→ 오산장(3.8일)→ 수원장(4. 9일)으로 이어지는 장길은 곧 소의 주요 유통경로였다. 수원 장날이면 각지에서 모여든 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1년 동안 거래되는 소가 2만 마리가 넘었다. 일제 때 수원 우시장은 전국을 대표하는 3대 우시장으로 하루 400마리 이상이 거래되었던 것이다.

100년전 성내 우시장

100년전 성내 우시장

1950년대 성안 우시장

1950년대 성안 우시장

1979년 우시장

1979년 우시장

수원갈비의 전통

수원 우시장으로 모여든 엄청난 소는 수원을 갈비의 본고장으로 만들었다. 우선 재료로 쓸 한우갈비를 구하기가 쉬웠던 것이다. '수원갈비'는 1940년대 팔달문 밖 영동시장 싸전거리에서 화춘제과를 경영하던 이귀성씨가 8·15 광복이 되면서 '화춘옥(華春屋)'이란 음식점을 시작한 것이 시초이다. 시장통에서 해장국 장사를 시작하였는데, 소갈비를 푸짐하게 넣어 주는 것으로 인기를 끌었고 손님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비싼 갈비로 해장국의 질은 좋았지만 남는 장사가 아니었다. 이에 갈비에다 양념을 넣고 무쳐서 만든 양념갈비를 구워 팔기 시작했다. 숯불에 구운 갈비는 맛이 일품이어서 더욱 인기였다. 당시 신문에 널리 소개되고 수원을 찾은 박정희 대통령도 화춘옥에 와서 갈비를 먹고 갈 정도였다.

이러한 화춘옥 갈비는 수원갈비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수원갈비는 양념갈비로 보통의 갈비보다 엄청 큰 왕갈비였다. 수원갈비 맛은 특별한 소스의 양념에 의해 판가름되는데 참기름을 비롯해 설탕․소금․마늘․깨․파․후추 등의 재료로 만든다. 이 양념소스를 발라 구워내는 양념갈비는 부드러우면서도 담백한 수원양념갈비 특유의 맛이다. 또한 간장을 쓰지 않고 소금으로 간을 맞추는 수원 특유의 생갈비구이와 커다란 갈비뼈를 넣어 만든 수원의 갈비탕까지 외지에서 온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화춘옥 방식의 수원갈비는 1985년 4월 12일 수원시 고유향토음식으로 지정되었고, 수원갈비축제는 세계적인 한국음식의 대명사 '수원갈비'를 널리 알리고 있다.

그럼, 오늘 저녁은 수원갈비로….

수원갈비1

수원갈비1

수원갈비2

수원갈비2

출처 : 수원문화원 - 수원을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