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 수원박물관 학예연구사

정조와의 인연

김홍도는 1745년(영조 21)에 태어났다. 출신 가문은 무반에서 중인으로 전락한 집안이라는 것만 확인되고,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다만 그의 나이 7~8세 때부터 경기도 안산에 있는 강세황(姜世晃, 1712~1791)의 집에 드나들며 그림을 배웠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유년기는 안산에서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김홍도는 강세황의 추천으로 이른 나이에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다. 20대 초반에 이미 궁중화원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1773년 29세의 나이로 영조의 어진과 왕세손(정조)의 초상을 그렸다. 이때부터 정조와 인연을 맺게 된 김홍도는 정조에게 규장각도를 바쳤고, 1781년(정조 5)과 1791년에 정조의 초상화를 또다시 그리기도 하였다. 정조는 김홍도의 풍속화를 즐겨 보며 백성들의 세상을 보았고, 1788년에는 금강산의 산수화를, 1789년에는 일본 지도를 그려오라 명하기도 하였다.

"김홍도는 그림에 교묘한 자로 그 이름은 안 지 오래다. 30년 전 초상을 그렸는데 이로부터 무릇 화사에 속한 일은 모두 홍도로서 주장하게 하였다."는 『홍재전서』(정조의 문집)에 나오는 이 글은 정조가 김홍도를 얼마나 총애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용주사와 김홍도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용주사는 1790년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융릉을 지키고 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 절이다. 조선시대 숭유억불의 정책으로 불교의 세력은 약해졌지만, 경기도 지역의 사찰은 왕릉이 만들어지는 지역이었기에 능침사찰(陵寢寺刹)들은 왕실의 보호와 일정한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다. 정조의 효심으로 이루어진 용주사 역시 사격(寺格) 자체가 남달랐던 곳으로 이러한 국가적인 사업에 김홍도 역시 빠질 수 없었다. 김홍도는 용주사가 완성되던 1790년 7월~9월까지 용주사 불화 감독관으로 있었다.

그 중 대웅전에 걸려있는 '삼세여래후불탱화'는 김홍도가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가모니, 약사여래, 아미타불의 설법장면을 한 폭에 담고 있는 이 불화는 서양화법인 음영법이 도입된 그림으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화풍을 보여준다. 이 그림을 둘러싸고 김홍도가 직접 그렸다는 의견과 불화들을 전문적으로 그리는 승려들에 의해 20세기 초에 원본을 참조하여 다시 그려졌다는 의견 등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두 견해 모두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김홍도 외 이명기, 김득신 등 당대 최고 화원도 함께 감독했으며 불화는 일반회화와 달리 전문적인 승려인 화승(畵僧)들이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김홍도는 화승들을 지휘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음영법이나 인물 표현 중 일부에 그의 의견을 반영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1796년 5월 정조의 어명으로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이 인쇄되어 용주사에 보관되었다. 그런데 그 삽도(揷圖)가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어 눈길을 끈다. 부모 은혜의 귀중함을 설법하는 『부모은중경』은 고려 말부터 유행하여 조선시대에도 유교적 효사상과 합치되어 많이 보급된 책이다. 용주사 본은 기존 본들과는 다르게 14장면으로 새롭게 정리되어 삽도가 그려져 있다. 불화와는 달리 부모은중경의 그림은 세속적인 장면이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며, 부처나 나한들의 옷의 선들, 정원, 건물, 나무 등의 화풍은 김홍도의 후기 회화에 자주 보이는 모습들이기 때문에 김홍도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1960년 용주사전경

1960년 용주사전경

2005년 용주사전경

2005년 용주사전경

화성춘추팔경도를 그리다

1796년 8월 19일 화성이 완공되면서 궁궐과 화성행궁, 수원 유수부에 비치될 여러 병풍과 족자들이 제작되었다. 이러한 내용은 『화성성역의궤』에 실려 있는데, 이 중 행궁에 비치된 「화성춘추팔경도」의 제목 역시 모두 기록되어 있어 주목된다. 화성춘추팔경도는 16폭의 병풍그림으로 1796년 10월 16일 화성 낙성연 때 화성행궁에 진열해 놓았던 김홍도의 작품이다. 아쉽게도 추팔경도병풍 중 떨어져 나온 두 작품만이 현존하여 서울대 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전해지는 두 작품은 '서성우렵도(西城羽獵圖)'와 '한정품국도(閒亭品菊圖)'로 1796년 완공된 수원화성의 실경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 왼쪽 상단에 예서체로 화성성역의궤에 기록된 제목 그대로가 적혀 있고, 그 아래 '신홍도(臣弘道)' '취화사인(醉畵士印)' 낙관이 찍혀있어 단원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추팔경 중 다섯 번째 작품인 서성우렵은 수원화성 서장대 밑과 화서문, 장안문 밖 들판에서 사냥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멀어져 갈수록 희미하고 가는 필치를 사용하여 시원한 조망감이 잘 살아난다. 일곱 번째 작품인 한정품국은 수원행궁 안의 미로한정(未老閒亭)에서 가을의 꽃인 국화를 감상하는 장면을 담은 것으로 낙남헌의 모습도 보인다. 한정된 지역을 담았으나 산사면의 계곡을 평행으로 배치하여 원근감을 내었고, 오른쪽 아래를 대담하게 연무가 낀 것으로 처리하여 공간의 막힘을 피하고 왼쪽 상단의 하늘과 멋진 조화를 이루었다. 화면의 구도, 공간처리, 칠치 등 김홍도의 원숙기의 기량이 잘 나타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용주사 삼존상

용주사 삼존상

용주사 후불탱화

용주사 후불탱화

출처 : 수원문화원 - 수원을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