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득 / 정조대왕 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머나먼 그리움의 길

노량주교도섭도

노량주교도섭도

정조는 1789년 10월 7일 사도세자의 재궁을 안치하기 위해 수원에 행차한 이래 매년 1차례 이상 행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1790년 1월 1일 정조는 사도세자의 생신에 맞춰 현륭원(顯隆園)에 나아가 제사를 지내기 위해 19일 행차한다는 하교를 했다. 정조의 수원행차가 대부분 1월에 있었던 것은 바로 사도세자의 생일에 맞춰 성묘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한강물이 얼어있는 시기를 택한 것이기도 했다. 정조의 1차와 2차 현륭원 원행은 뚝섬에 설치한 배다리를 이용했는데, 사도세자의 재궁을 운구하기 위해 놓았던 배다리를 철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배다리를 놓을 수 있었던 것은 한강이 얼어서 배의 통행이 불가능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원행시기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이유의 하나였던 것이다.

배를 이용하여 한강을 건너던 방식에서 배다리로 전환한 것은 이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정조는 이를 정례화하기 위해 <원행정례>를 마련하고, 광주나 여주 방향으로 행차할 때는 광진(廣津)에 설치하고, 수원이나 김포로 갈 때는 노량진에 배다리를 설치하는 것으로 정했다.
그리하여 노량진을 건넌 정조의 원행길은 사당을 거쳐 남태령을 넘고, 과천-인덕원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이 길은 1791년부터 1974년까지 이용되었으며, 대개 하루 일정으로 수원까지 행차했다.

원행의 방점, 현륭원에서의 승화

수원에서 다시 1박을 한 정조와 혜경궁은 현륭원을 행차하여 회한의 시간을 눈물로 닦았을 것이다. 33년 만에 이루어진 살아있는 어머니와 땅에 묻혀 있는 아버지의 만남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어머니를 위해 봉분 앞 석상에 제물을 차리게 한 정조는 한나절이 지나 화성행궁으로 돌아왔다. 원행로의 변경은 곧 정조의 효심이 아버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생각도 남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을묘년 원행 이후 정조는 시흥로를 기본으로 삼아 현륭원 원행을 했는데, 어머니를 모시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하루 만에 수원에 도착했다. 더구나 1797년에는 1월과 8월 두 차례 원행을 했는데, 8월에는 김포 장릉을 배알하고, 안산을 거쳐 현륭원재실로 직행했다. 1799년에는 여러 사정이 있어서 8월에 행차한 정조는 노량진 배다리를 건너 광주의 태종 헌릉을 배알한 뒤 현륭원 원행을 진행했다.

이렇듯 정조의 현륭원 원행은 오래 준비한 효의 길이고 문화 예술적 자원을 많이 남긴 아름다운 길이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과 문화적 활용 거리를 주는 뜻 깊은 길다.

정조대왕(가마)

정조대왕(가마)

출처 : 수원문화원 - 수원을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