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화 / 수원화성박물관 학예연구사
수원화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정조와 정약용을 떠올린다. 정조가 화성축성을 지시하고 정약용이 화성을 설계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나 정약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화성의 시설물을 설계한 사람이 아니다.
정조는 화성 축성공사를 시작하는 1794년 1월 전국 고을의 수령에게 성곽의 설계도를 그려서 바칠 것을 지시하였고, 정약용은 이렇게 모은 설계도를 바탕으로 요즘의 시방서에 해당하는 공사 지침을 마련했다. 그렇다면 화성의 실질적인 설계자와 시공자는 누구인가? 바로 편수라고 불리는 조선후기 장인이다. 여기에서 편수는 공정별 각 분야의 일을 책임지는 우두머리를 뜻한다.

최고의 기술자를 모집하라

수원화성의 4대문 석벽에는 공사의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성벽을 쌓은 이의 이름을 새겨 둔 공사실명판이 있다. 화성축성의 감독관과 석공 편수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 아마도 공사실명판에 새겨진 석공 편수는 당대 최고의 석공이었을 것이다.

팔달문공사실명판

팔달문공사실명판

『화성성역의궤』는 당시 축성공사의 모든 것을 기록한 보고서다. 이를 보면 전국에서 동원된 석수, 목수, 미장이, 칠장이 등 각 기술을 가진 장인들을 각 직종별, 지역별로 이름, 일한 곳, 일한 날짜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들 기술자는 무려 22종류에 이르며 모두 1,840명이 참여했다. 서울과 화성부와 개성부 등 인근 지역의 장인뿐 아니라 멀리 경상도와 함경도 등에서 특별히 재주가 인정되어 뽑혀 올라오기도 했다. 강원도 양양에 있는 명주사의 승려 진련(震蓮)과 경상도 영천 은해사의 승려 쾌성(快性)은 특별히 재주가 인정되어 뽑혀 온 승려이다.
『화성성역의궤』 권4 공장편

『화성성역의궤』 권4 공장편

화성 성역의 경우 편수는 모든 직종에 다 있는 것이 아니라 석수, 목수, 미장이, 와벽장, 대장장이, 기와장이 여섯 직종에 한정되어 있었다. 편수는 석공 662명 가운데 24명이 있었고, 목수 335명 가운데 16명이 있었다. 평균적으로 편수 1명이 일반장인 30명 내외를 거느렸다고 볼 수 있다.

일한만큼 대가를 지급하라

『화성성역의궤』 권4 식례편

『화성성역의궤』 권4 식례편

수원화성은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2004년에는 미국토목학회로부터 '역사적 토목 구조물(Historical Civil Engineering Landmark)'로 지정받음으로써 문화적 기술적 우수성과 함께 공학적인 가치를 인정받았다. 미국토목학회는 선정사유로 화성 축성에 참여한 장인들에 대한 임금제도와 설계에서부터 축성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의 우수성을 꼽았다. 미국토목학회가 꼽은 과학적인 임금제도는 정조시대의 산물이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수원화성 축성공사에 비로소 시작된 제도이다.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 당연한 일은 화성성역이 있었던 18세기 이전까지 감히 상상할 수 없던 특별한 일이었다. 조선시대 중기까지 나라에 큰 공사가 있으면 일반 백성들은 부역(賦役)의 의무를 졌다. 부역자는 본인이 먹을 음식을 직접 싸들고 나와 국가에서 시키는 일을 정해진 날짜만큼 해야만 했다. 특히 관청에 소속된 장인들은 1년 가운데 일정기간을 의무적으로 관청의 공사장에 동원되어 일을 해야만 했다.

정조는 즉위 직후부터 여러 가지 제도를 개선해 나가는데, 정조의 첫째아들이었던 문효세자의 사당을 짓는 공사에서 처음으로 작업일수를 기준으로 노임을 지급하는 방식을 시행했다. 그리고 화성축성 공사에서는 직종별로 일당을 달리하여 차등 지급하는 방식까지 시행하게 된다.

팔달산에서 볼 수 있는 것들

조심태에게 보낸 정조의 비밀 편지

조심태에게 보낸 정조의 비밀 편지

화성 축성이 진행되는 2년 반 동안 정조는 순조로운 공사를 위하여 여러 가지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날씨가 더워지면 더위에 몸이 쇠약해진 사람을 치료하는 환약인 척서단(滌署丹)을 내려주고, 노동에 힘들어하는 장인들에게는 영양제 제중단(濟衆丹)을 내려주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털모자와 무명 1필을 내려주기도 했다.
정조는 축성기간 동안 공사를 총괄하는 책임자로 있었던 화성유수 조심태와 비밀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이 편지에도 역시 장인들의 노고를 치하할 방법을 알리라는 내용이 있다. 땀 흘려 일하는 기술자의 노고를 치하하고 높이 대우하고자 했던 정조의 마음과 당대 최고의 기술력이 만나 탄생한 작품이 바로 수원화성이다.
출처 : 수원문화원 - 수원을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