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우 / 경기문화재연구원 경기학연구실

경기감영․경기관찰부는 오늘날의 경기도청

전국을 5도와 양계로 나누어 통치하던 고려의 지배체제는 조선왕조가 개창하면서 8도제(八道制)로 정비되었다. 이때 감사(監司, =관찰사)는 도(道)의 우두머리로서 관할구역을 순찰하며 행정․군사․사법 등 도정을 총괄했다. 감사가 직무를 보던 관청 건물을 감영(監營) 또는 포정사(布政司)라 불렀는데, 오늘날의 도청에 해당한다.

각 도의 감영은 대체로 도내에서 가장 큰 고을에 설치되었다. 경기도의 경우 처음 수원에 두었다가 『경국대전』이 편찬되는 성종대에 이르면 광주(廣州)로 옮긴다. 이후 다시 서대문 밖(지금의 서울시 중구 충정로1가 90번지)으로 옮겨졌으며, 1618년(광해군 10)에 포천에 새로운 감영이 생긴 후 경기감사는 서울과 포천을 오가면서 직무를 수행하기도 했으나 포천의 감영은 인조반정 때 없어졌다.

경기도청

경기도청

1895년 8도제를 폐지하고 전국을 23개의 부(府)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경기관찰사는 한성부관찰사가 되고, 감영은 관찰부(觀察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23부제는 1년 만에 폐지되고 1896년 13도제가 실시되면서 '경기관찰부'는 수원으로 이전되었다. 이른바 '한일합병'으로 관찰사가 도장관(道長官)으로 불리는 것과 함께 관찰부는 도청(道廳)으로 개칭된다.

한편 서대문 밖에 있던 경기감영은 이후 군영(軍營), 한성부 청사, 일본인 공립소학교의 사택, 고양군청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적십자병원이 건립되면서 건물이 헐리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경기도청은 광화문 앞에

경기감영도

경기감영도(京畿監營圖,19세기경)

1907년 7월 대한제국 정부는 광화문 앞에 장차 내부(內部) 청사로 쓸 건물을 신축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조선시대 때 의정부(議政府) 건물이 있던 자리로 지금의 서울 종로구 세종로 76-2번지에 해당한다. 총면적 472평 규모에 2층에 근대식 벽돌건물 형태로 설계된 이 건물은 1910년 8월에 준공되었으나, 곧바로 대한제국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내부 청사가 아닌 조선총독부 경기도청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당시 서울(경성)에는 한성부가 있고 수원에는 경기관찰부가 있었는데, 서울이 경기도에 속하게 되면서 한성부를 폐지하고 경기관찰부를 서울로 옮기기로 한 것이다. 수원에 있던 경기관찰부는 1910년 12월 30일 이 건물로 이전을 마무리했다. 이 건물은 처음부터 관청으로 쓸 목적 아래 설계된 것이어서 예술적인 조형미는 뛰어나지 않으며, 전체적으로 좌우 대칭의 영국식 르네상스풍을 띠고 있다.

광복 후 경기도는 청사를 미군에게 내주고 태평로의 조선제련회사 사옥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옛 청사로 옮겨 도정을 수행했다. 경기도청을 수원으로 옮긴 후 이 건물은 내무부 치안국, 서울시경찰국 별관 등으로 사용되다가 1990년 초에 철거되었다.

도청을 품은 '경기도의 으뜸고을' 수원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서울이 특별시로 승격하며 경기도에서 분리되자 경기도청은 경기도 땅이 아닌 곳에 위치한 꼴이 되었다. 그래서 도청이 마땅히 관할구역 안에 있어야 한다는 인식 아래 인천과 수원을 중심으로 각각 도청을 이전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1953년 4월 15일 인천에서 먼저 '경기도청 유치위원회'가 조직되어 활동을 시작하자 1주일 뒤 수원에서는 '경기도청 수원 존치위원회'를 구성했다. 특히 수원은 도청의 '유치'가 아니라 '존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조선시대 때 이미 수원에 도청(감영)이 있었던 역사성의 부각과 함께 6․25전쟁 중의 임시 도청이 수원에 설치되어 있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휴전이 성립된 후 경기도청은 광화문 앞의 옛 청사로 복귀했다. 1962년 수원의 유지 김구배(金九培)가 개인 자격으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게 건의서를 제출했고, 1963년에는 박창원(朴昌源) 도지사가 청사를 시흥군 안양에 이전할 것을 보고하기도 했다.

이때 도청 이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이병희(李秉禧) 도청수원유치위원회 위원장이었다. 그는 '도청의 수원 유치는 당연한 일이며, 경기도가 크게 발전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관철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특히 삭발을 감행한 채 박정희 의장에게 달려가 무릎을 꿇고 도청 수원이전을 청원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마침내 1963년 12월 16일 경기도청을 수원으로 이전한다는 법률이 공포됨으로써 10년 동안 지속된 도청 이전 경쟁이 끝을 맺게 되었다. 1964년 10월 15일 팔달산 아래 수원공설운동장 터에서 경기도청사 신축 기공식이 거행된 데 이어 1967년 6월 23일 도청 이전식과 시민환영대회 및 대대적인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처럼 수원은 조선시대 이래 경기도의 수부(首府), 즉 '으뜸고을'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1949년에 개성․인천과 함께 경기도에서 가장 먼저 시(市)로 승격된 도시다. 그뿐 아니라 인천이 경기도에서 분리된 1981년 후부터는 명실공히 경기도의 '제1도시'로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경기도청 (1920)

경기도청 (1920)

출처 : 수원문화원 - 수원을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