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균 / 경기문화연구원장

종이 없던 종로거리

종로 여민각 준공

종로 여민각 준공

언제부터인지 수원 종로는 종이나 종각도 없이 이름만 종로로 불렀다. 일제강점기에 없어졌는지 한국전쟁 때 없어졌는지 종도 없이 늘 종로로 불렀던 것이다. 어른들이 종로라고 부르니 대를 이어 아이들도 그냥 종로라고 하였고, 종로에 꼭 존재해야 할 종이 없음에도 늘 자연스럽게 종로라고 불러왔다.

화성행궁은 일제강점기에 경찰서와 병원 등으로 사용되었고 광복 후엔 도립병원과 경찰서 등으로 계승되어왔다. 행궁도 존재가치를 잃었을 정도니 종로의 존재는 아련한 기억 저편에서 가물거렸던 것이다. 다만 주변에 오래된 종로교회(1899년 설립)와 우체국 및 여러 병·의원들이 자리를 잡아 '종로문화'를 '종'없이 이끌었다.

그래서 혹자는 서울의 종로를 본받아 그냥 종로라고 한 게 아니냐고 묻기도 하였다.
그럼 어디를 종로로 불렀을까? 화성의 북문인 장안문에서 남문인 팔달문까지 뻗어 내린 남북로 가운데 장안문 쪽으로는 장안사거리 주변까지이고, 팔달문 쪽으로는 한데우물길에서 옛 종로예식장으로 가는 길 주변까지를 종로라고 일컬었던 것 같다. 물론 위에 언급한 경계지점 언저리는 편의에 따라 북문거리로도, 남문거리로도 불렀다.

종을 달아 종로를 되살리자

종로교회와 종각자리

종로교회와 종각자리

윤한흠선생(1923~)은 남창동에서 태어나 수원의 옛 정취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런데 어디에서도 옛 모습을 보기 어렵게 되자 1970년대 들어 직접 그림을 그려서 후세에 남기기로 마음을 먹는다. 자신의 기억과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수원과 화성의 옛 모습을 하나씩 그리기 시작하였다. 물론 전문적으로 그림 공부를 하지 않아서 회화사적 가치는 잘 모르지만 역사성만큼은 높이 칠 만한 그림들이다.

그 가운데 말로만 존재하던 종각과 종이 있는데 그 위치가 종로 네거리 동남쪽이자 남동쪽 모서리였다.

화성을 쌓을 때 창룡문에서 행궁을 향해 오다가 장안문과 팔달문을 연결하는 남북대로와 만나 십자로가 형성되었는데 그 한쪽에 종루를 세우고 종을 달아 파루를 쳤던 것이다. 서울의 종각이 종로에 놓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1997년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다음 결성된 (사)화성연구회는 화성의 옛 모습을 찾아내기 위해 힘을 모았다. 그래서 '종로'라는 이름에 대해 고민하던 중 윤한흠 선생 관련 제보가 들어왔고 그의 그림에서 종로거리와 종각, 종각 속에 든 종까지 찾아낼 수 있었다. 윤선생 역시 종로의 종을 확실하게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주변 노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었다.

화성연구회에서는 종로에 종을 달고 종각을 세워 보존하며 주요 행사 때마다 타종을 하여 수원의 중심으로 삼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수원시에 종각 복원과 종 설치를 지속적으로 제안하였다. 이는 여러 상가의 매입과 세입자 보상금 문제 등이 따르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예산을 세워 건물주들과 세입자들을 설득하기 시작, 2008년 10월 드디어 종을 매단 종각을 준공하였다. 이름 하여 여민각(與民閣)이 탄생한 것이다. 용주사범종(국보 제120호)을 모델로 한 종은 무게 20여 톤에 높이 3.2미터, 직경 2.2미터의 위용을 지닌다.

종로의 변화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위하여

종화성군청1960년대

화성군청1960년대

수원의 종로는 서울의 종로와 다름없이 발전해왔다. 화성행궁이 지척이었고, 정조임금의 의지로 설립된 시장을 품었으며, 위치도 화성의 중심을 이루는 한복판이었기 때문이다. 화성과 함께 발전해 온 성안시장은 오늘날 중앙시장으로 남았지만 규모도 작고 점포수도 적어 명맥만 유지해가는 정도로 쇠락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만 해도 과일․채소 등이 엄청나게 들고나는 도매시장이었다. 그러다 인계동에 농수산물 도매시장이 생기면서 위축되었고, 권선동에 대규모 도매시장이 생긴 후 또다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종로에는 은행과 서점을 위시해 줄줄이 선 예식장, 화방, 문구상, 양복점, 제화점, 병원 등이 나름의 '종로문화'를 이끌었다.

식당이며 술집 등이 자리를 잡은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즉 낮에 종로에 나간다는 것은 진료나 문화생활·소비를 위한 것이었고, 밤의 그것은 향락을 위해 나가는 것과 비슷한 의미였다.

종각을 세워 종을 매단 지금의 종로는 어떤가? 아직은 문구도매상들이 즐비하게 선 문구거리와 수십 년을 이어오는 식당 몇 군데, 통닭집 등이 옛 영화를 되살리는 중이다. 병원들도 대로변을 빼고는 거의 신시가지로 이전하였고 예식장들은 문을 닫았다. 서점 대신 헌책방들이 들어섰고 고급 옷을 팔던 자리에는 저렴한 옷이나 생필품 판매 점포가 들어섰다. 그래도 대를 물려가며 영업하는 냉면집이며, 곱창집, 중국식 만두와 요리를 파는 중식당 등이 중년과 노년의 추억을 달래준다.

비록 화려하지는 않아도 종로가 앞으로 활발한 문화 활동의 거리로 거듭날 수 있을까. 화성행궁과 어울리는 공연장이며 전시장, 판매점들이 많이 들어서서 옛 영화를 재현하면 좋겠다. 화성을 찾는 시민이며, 국내관광객과 외국인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는 종로문화의 부활을 기대한다.

출처 : 수원문화원 - 수원을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