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 시인

일번지, 사전에는 없는 낱말

한동안 음식점 간판마다 마치 유행처럼 '원조'라는 말이 붙었다. 원조 갈비집, 무슨 원조 아귀찜 혹은 원조 충무김밥, 원조 부대찌개 등등 그 예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와 유사한 뜻으로 '일번지'라는 말이 생겨났다. 일번지 횟집, 패션일번지 등등. 그뿐인가, 국회의원이나 지방의회의원 선거 때면 입후보자마다 자신이 출마한 지역구를 교육 일번지로 만들겠다고 열변을 토한다.

그런데 막상 '일번지'라는 말은 사전에는 표제어로 나타나지 않는 낱말이다. 본래 번지(番地)라는 말의 뜻은 토지번호를 지적법에 따라 매겨놓은 순서를 일컫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주소를 이루는 끝단위이다. 그렇다면 일번지는 특정 주소를 가리키는 말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 누구라도 일상대화에서 '일번지'를 그런 뜻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언제부턴가 어떤 특정 업종의 점포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상권의 중심지 혹은 특정 업종을 시작한 집을 일컫는 관용어로 자리 잡은 말이 '일번지'이기 때문이다.

추억이 되어버린 수원의 일번지

사통팔달 팔달문. 수원은 수원시민이 흔히 남문이라고 부르는 팔달문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다. 당연히 수원의 상징적인 일번지는 그 일대였다.

남문을 기점으로 이른바 일번지라 일컬을 수 있는 문화는 물론 각종의 중심상가들이 뻗어 나갔다. 시계나 귀금속점들은 보건약국 뒷골목으로 들어가 수원천 쪽에 몰려 있었고 수원의 상징적인 먹거리라 할 수 있는 갈비집들도 실은 거의 그 근처에 문을 열고 있었다. 지금은 거의 다 주인도 바뀌었고 다른 중심상권으로 옮겨 갔지만 화춘옥이니 수원갈비 혹은 명성옥 등 수원의 유명한 갈비집들은 보건약국과 수원천 사이에 남북으로 난 골목 안에 있었다. 대부분 미군 피엑스에서 흘러나온 물건들이었지만 수입 식품이나 양담배 등 외제물품을 구할 수 있는 소위 양키시장은 옛날 크로바 백화점 자리 맞은편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가구점은 남문에서 지동 시장 쪽으로 들어가다 좌측으로 접어들면 그곳에 모여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약재를 파는 건재상, 약국, 악기점, 서점 등 그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이 수원에서 유명하다는 뿌리 깊은 집들은 모두 남문에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수원에서 적어도 삼십 년 이상 산 사람들이나 기억해낼 뿐이고 그 옛날의 '일번지'는 이제 그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아직도 그 모습 그대로인 곳을 굳이 찾자면 인쇄나 출판에 관계된 업종들이 남문에서 중동 파출소를 지나 그 뒷길로 접어들어 매산초등학교로 가는 길에 자리 잡고 있는 정도라고나 할까. 물론 영동시장 옆 중앙시장에 밀집해 있던 한복이나 이불을 파는 집들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옛날의 흥청거리던 시장의 모습은 찾을 수 없고 왠지 을씨년스러운 모습들로 예전 일번지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영통

영통

인계동

인계동

새롭게 형성되어 가는 일번지에 거는 기대

그렇다면 수원의 새로운 일번지는 어디일까? 수원시청이 인계동으로 옮겨가고 그 일대에 상권이 형성되면서 이른바 인계동 로데오 거리는 유흥가의 일번지로 자리 잡았다. 또 영통이 개발되면서 아파트가 밀집하게 되자 수원에서 택시를 타고 '영통 일번가로 가 주세요.' 하면 으레 영통 먹자골목이 접해 있는 대로변에 차를 세워 준다. 예전에는 한적하기만 했던 수원역 맞은 편 일대도 넘치는 젊은이들로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중심상권으로 바뀌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렇게 새롭게 형성된 일번지들은 대부분 유흥과 소비문화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수원의 새로운 일번지들이 꼭 그런 부정적인 모습만은 아니다. 나혜석 거리를 중심으로 그 일대에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과 소비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바람직한 공간으로 형성되었다. 그 일대에 있는 경기도문화의전당과 수원 야외음악당이 상호 유기적인 작용을 하면서 형성된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반가운 일은 수원행궁에서 남문까지 행궁동 뒷길의 모습이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舊) 도시 중심권의 슬럼화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도시들이 겪는 도시생애의 필연적 단계이다. 수원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한동안 남창초등학교에서 신풍초등학교까지의 길은 재개발에 묶인 채 쇠락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했던 가옥들이 밀집해 있는 낙후된 지역이었다. 삼십 년 전만 해도 수원의 제일 부촌이던 동네가 차차 빈민들의 주거지로 변해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러던 곳이 화성 복원 사업과 맞물려 그 일대에 공방과 갤러리들이 집중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길을 천천히 걷자면 왠지 행복해지는 거리로 바뀐 것이다.

문화의 사전적 정의는 인간 삶의 총체적 양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비단 소비문화뿐만 아니라 유무형의 가치까지 살아 숨 쉬는 지역이 참된 의미의 일번지로 불려야 할 것이다. 새롭게 형성되는 수원의 일번지들이 서로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수원시민의 삶의 질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나혜석거리

나혜석거리

나혜석상

나혜석상

출처 : 수원문화원 - 수원을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