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민 / 수원박물관 학예팀장

화성에 대한 자부심 - 화성16경

수원8경은 세계문화유산 화성을 중심으로 한 가장 아름다운 장소, 즉 명승을 일컫는다. 예나 지금이나 가장 많은 수원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혹자는 수원8경이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냐는 억측으로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이는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짧은 견해에 불과하다. 수원8경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계승되어 왔는가를 살펴보자. 우리 선조들은 지역의 명승을 꼽아 8경(八景), 8영(八詠), 10영(十詠) 10경(十景), 12경(十二景) 등으로 부르며 감상해왔다. 이는 중국의 '소상8경(瀟湘八景)'의 예를 따른 것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이 '화성16경'이다. 화성의 춘8경(春八景)․추8경(秋八景)을 꼽았으니, 곧 화성16경이다.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용례로 화성에 대한 정조의 지극한 배려와 자부심을 보여준다. 더욱이 정조는 화사 김홍도로 하여금 화성16경을 그리게 하여 화성행궁에 배치하게 했다. 이러한 화성16경은 1796년 봄에 지정되어 그림으로 그려졌다. 화성16경은 다음과 같다.

춘8경(春八景)은 ①화산서애(花山瑞靄, 화산에 피어오르는 상서로운 안개), ②유천청연(柳川晴烟, 버드내에 비갠 후의 아지랑이 낀 경치), ③오교심화(午橋尋花, 매향교에서 꽃구경), ④길야관상(吉野觀桑, 관길야(북문 밖)에서 뽕나무 구경), ⑤신풍사주(新豊社酒, 신풍루(행궁 정문) 앞에서 술 먹는 경치), ⑥대유농가(大有農歌, 대유둔(북둔)에서 농사짓는 노래소리), ⑦화우산구(華郵散駒, 영화역에 말을 풀어 놓음), ⑧하정범일(荷汀泛鷁, 연꽃 물가(만석거)에 떠 있는 채일(채색 배)이다.

추8경(秋八景)은 ①홍저소련(虹渚素練, 화홍문 아래 흰 물보라), ②석거황운(石渠黃雲, 만석거 누른 구름) ③용연제월(龍淵霽月, 용연의 맑게 갠 달) ④귀암반조(龜岩返照, 남수문 옆 거북바위의 낙조) ⑤서성우렵(西城羽獵, 서성 밖에서 화살을 꽂고 사냥하는 경치) ⑥동대화곡(東臺畵鵠, 동장대에서 새를 그린 솔(과녁)을 쏘는 경관) ⑦한정품국(閒亭品菊, 미로한정에서 국화 감상) ⑧양루상설(楊樓賞雪, 화양루에서 눈을 보는 경관) 등이다.
재 김홍도가 그린 화성16경 가운데 서성우렵도와 한정품국도가 남아 전하고 있다.

화성10영(華城十詠)과 화성8경(華城八景)

화성16경 이후 순조 때 박윤묵(朴允默, 1771~1849)의 『존재집(存齋集)』에 실린 한시 '화성10영(華城十詠)'이 주목된다. 박윤묵은 1790년(정조 14) 20살의 나이에 규장각에 들어가 교정 일을 보면서 정조의 고임을 받으면서 10년간 정조를 가까이 모셨다. 1832년(순조 32) 62세의 나이에 화성을 중수하는 감동(監蕫)이 되어 화성과 깊은 인연을 가졌던 인물이다. 그의 '화성10영(華城十詠)'은 ①화령전(華寧殿), ②봉수당(奉壽堂), ③득중정(得中亭), ④미로한정(未老閑亭), ⑤장대(將臺), ⑥노대(弩臺), ⑦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⑧축만제(祝萬堤), ⑨영화정(迎華亭), ⑩성신사(城神祠) 등을 꼽고 있다. 정조의 명에 의해 건립된 성신사를 승경으로 꼽은 독특한 사례이고, 축만제를 언급함으로써 이후 수원8경의 서호낙조의 공간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고종 연간에 제작된 8폭 병풍 '화성8경(華城八景)' 시는 또 '화성8경'의 명명과 함께 새로운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①신풍효각(新豊曉角, 신풍루의 새벽 뿔피리 소리, ②병암간수(屛巖磵水, 팔달산 병풍바위의 석간수) ③동성봉화(東城烽火, 동성의 봉홧불), ④장대관사(將臺觀射, 동장대의 활쏘기 행사), ⑤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⑥용연순채(龍淵荀菜, 용연의 순채), ⑦홍교청수(虹橋聽水, 화홍문 칠간수의 물소리), ⑧서대망원(西臺望遠, 서장대에서 보는 먼 풍경) 등이다.
화성을 중심으로 하는 명승에 대한 끊임없는 찬탄과 더불어 화성16경이 점차 '화성8경'으로 정리되어 갔음을 보여준다.

수원8경의 등장과 확산

'화성8경'은 이후 '수원8경'으로 명명되면서 새롭게 정리되어 간다. 사카이 마사노스케(酒井政之助)가 1914년 『발전하는 수원(發展せる水原)』에 '수원8경'을 실었다. 현재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수원8경'이다. 이후 사카이는 『수원(水原)』(1923)이라는 책자에 수원8경을 그대로 전재하였고, 이를 다시 전재한 나이또오(內藤倫政)의 『古蹟と風俗』(1927)을 통해 수원8경이 일본인들이 만든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져왔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책자에 실린 수원8경은 그들의 창작품이 아니라 수원에서 널리 회자되던 것을 채록한 것에 불과하다. 이미 1912년 4월 7일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수원8경(水原八景)'이 게재되었다. 수원 남창리에 거주하던 이원규(李元圭)가 수원에서 널리 알려진 것을 채록한 것이다.

수원8경의 변용

수원8경의 변용
이원규(1912) 藤野君山(1913) 酒井政之助(1914) 비고
①화산두견(花山杜鵑) ③화산척촉(花山躑躅) ④화산척촉(花山躑躅) 화산의 철쭉
②나각망월(螺角望月) ⑧나각대월(螺閣待月) ⑧용지대월(龍池待月) 소라각/[용지]의 달맞이
③화홍관창(華虹觀漲) ⑥화홍관창(華虹觀漲) ⑦화홍관창(華虹觀漲) 화홍문의 물줄기
④남제장류(南堤長柳) ①남제장류(南堤長柳) ③남제장류(南堤長柳) 남제의 버드나무
⑤북지상련(北池賞蓮) ⑤북지상련(北池賞蓮) ⑤북지상련(北池賞蓮) 북지(만석거)의 연꽃구경
⑥광교적설(光敎積雪) ④광교적설(光敎積雪) ①광교적설(光敎積雪) 눈쌓인 광교산
⑦서호낙조(西湖落照) ②서호낙조(西湖落照) ⑥서호낙조(西湖落照) 서호의 석양
⑧팔달제경(八達霽境) ⑦팔달제미(八達霽美) ②팔달청람(八達晴嵐) 비갠 뒤의 팔달산

수원8경은 이원규가 만든 것도 아니고, 일본인들(후지노, 사카이)이 만든 것은 더욱 아니다. 이미 수원사람들이 각종 시회(詩會)를 통해 오랫동안 읊어 전해왔던 것이다. 이는 나혜석의 수원8경과 수원역전 여관업자들의 또 다른 수원8경의 존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후 수원8경은 일제강점기 각종 신문과 잡지에 실려 널리 알려졌고, 지금까지 전해져왔다. 누구나 그곳에 가면 경탄을 할 수 밖에 없는 절경의 명소들이다. 수원8경은 정조 임금 이래 수원사람들이 오랫동안 만들어온 집단적 창작의 문화공간인 것이다.

출처 : 수원문화원 - 수원을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