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 시인

천막극장, 그 아련한 추억

영화에 대한 가장 오래 된 추억은 천막극장이 서는 날, 저녁나절의 기다림이다. 60년 대 중반 무렵의 이야기다. 동네 공터에 나무 말뚝을 몇 개 박고 광목천으로 그 둘레를 두르면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극장 하나가 완성되었다.

그 때에도 물론 극장은 있었다. 크로바 백화점이 있던 자리에 시민관이, 훗날 아카데미 극장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수원역 맞은 편 골목에는 매산극장이 있었다. 그리고 이춘택 병원 자리 인근에 있는 한복집은 본래는 수원극장이었다. 보릿고개가 그대로 남아있던 팍팍한 시절이다.

당시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게 언감생심이었고 어쩌다 동네에 천막극장이 들어오면 초저녁부터 온 동네가 술렁였다. 천막이 쳐지고 그 안에 가마니 자리가 깔렸다. 암막시설이 없는 야외 공간이기에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려야 했다. 긴 여름 해가 지고 마당에 모깃불을 놓을 무렵 천막 안에서 스르르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광목천으로 만든 임시스크린에 흑백영화가 시작되는 설렘의 순간이었다.

극장의 전성기, 동시상영관과 지정석이 없던 수원의 극장

1950년대 중앙극장

1950년대 중앙극장

차차 영화가 확실한 대중문화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수원에도 영화관이 둘이나 더 늘었다. 남문 버스 정류장 옆으로 중앙극장이, 팔달사 맞은편에 국제극장이 새로 생겼다. 새로운 시설에 상대적으로 많은 좌석을 확보했던 두 극장은 소위 개봉관으로 자리매김을 했고 나머지 수원극장과 시민관 그리고 아카데미 극장은 두 편을 동시 상영하는 극장이 되어버렸다.

그 동시상영이라는 게 재미있었다. 이미 개봉관에서는 우려먹을 만큼 우려먹고 난 영화이거나 흥행에 실패해 일찌감치 간판을 내린 영화 두 편을 차례로 보여주었다. 그 무렵에는 극장에 지정석이 없었다. 혹 영화상영 중이라도 아무 때나 들어가 빈자리에 앉으면 그만이다.

심지어는 바구니에 오징어나 땅콩 음료수 따위를 담은 장사꾼이 상영 중애 통로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팔아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모습은 개봉관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다 괜찮은 영화가 들어오면 극장 앞은 인산인해를 이뤘고 극장에선 안에 좌석이 있든 말든 표를 팔았다. 겨우 표를 구해서 안으로 들어가도 좌석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통로 바닥에 앉거나 극장 벽에 기대어 서서 보는 둥 마는 둥하다가 한 회 상영이 끝나면 그 막간에 그야말로 잽싸게 자리를 잡고 앉아야 그 다음 회 상영을 편안하게 볼 수 있었다. 1970년대와 80년대였던 그 무렵이 수원의 극장사업이 가장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극장은 없다 영화관이 있을 뿐이다.

1974년 10월 11일 아카데미 극장, 신성일 주연의 '속 눈물의 웨딩드레스'가 상영중

1974년 10월 11일 아카데미 극장
신성일 주연의 '속 눈물의 웨딩드레스'가 상영중이다

극장마다 극장 간판을 그리는 작업실이 따로 있었다. 영화가 바뀔 때마다 영화 장면을 새로 그려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극장마다 그 간판의 그림 수준이 달랐다는 점이다. 시골의 변두리 극장의 간판은 한눈에도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 유지인을 그려 놓았는데 왠지 정윤희 얼굴을 그려 놓은 것 같았고 장미희 얼굴은 그 이전 세대의 배우인 윤정희의 얼굴이었다. 한국 배우들의 얼굴은 그래도 그나마 나았다. 외화(外畵)인 경우는 카우보이모자만 씌어놓고 존 웨인이라고 믿으라는 식의 그림들이었다. 그렇지만 수원의 극장 간판은 그래도 제법 품격이 있었다. 영화의 스틸사진을 놓고 그렸겠지만 극장마다 그 간판의 개성이 뚜렷했다. 배경을 과감히 생략하고 대형 붓 처리로 흘리는 등 제법 순수 회화 수준까지 다가가려는 그림들도 간혹 볼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수원 극장의 간판들도 차차 조잡해져 갔다. 재벌들이 운영하는 영화관들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기존의 극장들은 차차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영화 간판의 수준에서 그 쇠락의 정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하나 둘씩 극장들이 문을 닫았다. 시민관이니 수원극장 그리고 아카데미 극장이나 로얄극장 중앙극장 하는 이름들은 그야말로 수원 토박이가 아니면 이젠 그 자리가 어디였는지조차 모른다. 로얄극장이 있던 자리로 옮겨가 극장의 명맥을 유지하던 중앙극장마저 문을 닫았다. 그 자리엘 가 보니 중앙극장이라는 간판은 남아있는데 막상 건물 안으로 들어가도 극장은 없다.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어야 할 자리에 찢어진 비닐만이 남아 을씨년스럽게 수원 극장 사업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이제 수원에 극장은 없다. 다만 재벌들이 운영하는 영화관들이 있을 뿐이다.

얼마 전 영화 '피에타'로 김기덕 감독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짧은 역사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한국 영화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영화는 단순히 시각과 청각으로만 만나는 게 아니다. 그야말로 오감(五感)으로 끌어안게 되는 호사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도 덩달아 행복해졌음은 분명하다. 그래도 가슴 한 구석엔 재벌의 시장논리가 앗아간 극장에 대한 추억이 짠한 아쉬움으로 남아 있음도 또한 분명하다.

파괴전 바미얀 석불

수원에서 규모가 가장 큰 극장이었던
예전의 중앙극장을 허물고 신축한 건물이다.
가운데 텐트 아래 흰색 매대가 있는 곳이
극장표를 파는 매표소였다.

파괴된 바미얀 석불

원래는 국제극장 자리였다.
한동안 중앙극장이 이전해 와 건물의 일부를
극장으로 사용했다. 지금은 그나마 완전히 문을 닫고
철거하지 않은 간판만이 이곳이 예전에는
극장이었음을 말해준다. 간판 위로 영화 포스터를
거는 박스의 찢어진 비닐천이 을씨년스럽다.

출처 : 수원문화원 - 수원을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