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유석 / 한국외대 겸임교수

광교산, 저수지의 물을 대다

저수지는 물을 모아 두기 위하여 하천이나 골짜기를 막아 만든 큰 못이다. 물의 과다 또는 과소를 조절하는 인공적 수리시설의 한 종류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제방이라는 뜻의 제언(堤堰)이라 불렀으나, 수리시설의 기능이 분화되면서 최근에는 보(洑)·방조제(防潮堤) 등과 구분하여 저수지라 부른다.

저수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천이나 골짜기의 물이 많아야 한다. 수원의 저수지는 광교산에서 발원해 내려오는 수원천, 서호천, 원천리천, 황구지천의 물을 저장해 만든 것이다. 수원천은 광교저수지로 유입되고, 서호천은 서호저수지로, 원천리천은 원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로 유입되는 식이다.

아래 <그림>을 보면, 광교산 주변에 수많은 하천들이 모세혈관처럼 산 아래로 흘러내려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원천저수지 같은 경우에는 1차수 하천인 문암골천, 동녘쇠죽골천, 쇠죽골천, 성죽천, 절골천이 흐르고 산의실하천은 바로 원천저수지로 유입된다.

이처럼 광교산에서 발원한 하천이 하광교소류지, 사방댐, 광교저수지, 파장저수지, 원천저수지, 신대저수지, 일왕저수지(만석거), 서호, 일월저수지 등 수원 저수지의 대부분을 메우고 있다.

수원시 옛 물길 지도

수원시 옛 물길 지도

수원시 옛 물길 지도
구분 이름
광교산
하천 A 황구지천
B 서호천
C 수원천
D 원천리천
저수지 1 일월저수지
2 서호저수지
3 일왕저수지
4 광교저수지
5 원천저수지
6 신대저수지
7 파장저수지

성을 지키기 위해 저수지를 만들다

저수지는 벼농사의 발달과 맥을 같이 한다. 수원의 저수지들도 대부분이 농사를 위해 만들어졌다. 특히 일왕저<수지와 서호저수지는 농업진흥을 위한 정조대왕의 꿈이 담긴 곳이다.

장안구 송죽동에 있는 일왕저수지의 원래 이름은 만석거(萬石渠)이다. 만석거는 정조19년(1795) 장안문 북쪽의 황무지를 개간하고 안정된 농업경영을 하기 위해 축조한 수리시설이다. 만석거에는 "10년을 기다려 만석을 거두는 이(利)가 있다면 성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정조의 뜻이 담겨 있다.

정조는 광교산에서 정자동으로 흘러내리는 진목천의 물을 막고 둑을 쌓아 만석거를 만들고 대유둔(大有屯)을 조성했다. 정조대왕은 화성능행을 할 때 이곳을 경유하여 장안문을 통과하고 현륭원으로 가기도 했다. 현재 만석거는 향토유적 제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서호(西湖)에도 농업진흥에 대한 정조의 꿈이 담겨 있다. 서호의 원래 이름은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는 축만제(祝萬堤)인데 화성 서쪽에 있어 서호로 더 많이 불려왔다. 서호는 수원에 화성을 축성한 뒤인 정조 23년(1799)에 축만제둔의 관개시설로 만들어졌다. 축만제둔(祝萬堤屯, 西屯)은 축만제 인근에 있는 국영농장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이 이곳에 농촌진흥청과 서울농대를 두고 농업연구를 계속해 갔다.

아래 표의 수원 소재 저수지 현황에서 볼 수 있듯이 상수원보호를 위해 만든 광교저수지와 파장저수지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농업용수로 이용하기 위해 축조했음을 알 수 있다.

수원 소재 저수지 현황

수원 소재 저수지 현황
no 저수지명 설치년도 유역면적 저수량 이용
1 일월저수지 - 277ha 29.9만톤 농업용수
2 서호저수지[축만제] 1799(정조23) 2,107ha 67.8만톤 농업용수
3 일왕저수지[만년제] 1795(정조19) 416ha 37.3만톤 농업용수
4 광교저수지 1940 1,098ha 2,973만톤 상수원보호구역
5 원천저수지 1929 333ha 198.8만톤 농업용수
6 신대저수지 1929 647ha 144.3만톤 농업용수
7 파장저수지 1981 - 451만톤 상수원보호구역

저수지의 아름다움이 이어져오다

수원에 저수지가 많은 또 다른 이유는 저수지의 용도를 발전시켜가면서 계속 관리해왔기 때문이다. 본래 저수지의 물은 지표수 유량을 조절하여 수력발전, 상수도, 공업용수로도 사용할 뿐 아니라 관광지로도 개발할 수 있는 다목적성 수자원이다. 농업용수를 대기 위해 만들었던 수원의 저수지들도 세월이 흐르면서 휴양지, 낚시터, 공원 등의 모습으로 기능을 바꿔가면서 수원사람들의 곁에 있었다. 이는 저수지를 만들 때부터 주변의 경관을 가꾸어왔기에 가능했다.

예부터 서호는 수원팔경의 하나인 '서호낙조(西湖落照)'로 유명하다. 저수지의 서쪽 기슭에 있는 항미정(抗眉亭)이라는 정자는 이 낙조를 구경하기 위해 순조 31년(1831) 당시 화성유수였던 박기수가 세운 것이다. 지금은 서호주변에 산책과 자전거를 탈 수 있는 트래킹길과 서호공원이 있어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일왕저수지는 연꽃풍경으로 유명하다. 정조는 저수지 가운데 작은 섬을 두어 화목을 조화롭게 심고, 호수에 연꽃을 심었으며, 호수 남단의 약간 높은 곳에는 영화정(迎華亭)을 세워 정자에서 만석거 부근을 조망할 수 있도록 배치했다. 이런 일왕저수지의 풍경은 수원팔경의 하나인 북지상련(北池賞蓮)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일왕저수지 주변에 만석공원이 조성돼 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1970~80년대 원천저수지는 수원사람들의 유원지이자 놀이공원, 낚시터가 되었다. 지금은 광교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조망권을 높여주는 호수공원으로 조성되고 있다. 저수지에 나가면 등산객들이나 가족단위 방문객들이 한가롭게 호수 주변을 거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하천의 생태를 복원하려는 시민단체와 수원시의 노력이 숨어 있다. 정조가 천년만년 성(成)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만들었던 저수지들을 지금 이시대의 사람들은 자연과 어우러지는 도심의 생태공간으로 가꾸어가고 있는 것이다.

정조의 꿈을 담고 있는 서호

정조의 꿈을 담고 있는 서호

연꽃 풍경이 아름다운 일왕저수지

연꽃 풍경이 아름다운 일왕저수지

공원으로 조성되고 있는 원천저수지

공원으로 조성되고 있는 원천저수지

광교저수지에서 여가를 보내는 사람들

광교저수지에서 여가를 보내는 사람들

출처 : 수원문화원 - 수원을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