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 / 수원화성박물관 전문위원

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성장

우장춘 박사

우장춘 박사

우장춘(禹長春)은 1898년 4월 9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우범선(禹範善)은 미국이나 러시아보다는 일본과 협력하여 개화하려던 한말의 급진 개화파 중 한 명이었다. 훈련대 제2대대장으로 근무하던 중 러시아와 협력하려던 명성황후를 살해한 을미사변에 가담하여 체포령이 내려졌으나 일본에 망명했다. 일본 여성 사카이(酒井)와 결혼하여 도쿄에 거주했으나 1903년 12월 본국에서 파견된 자객 고영근(高永根)에게 암살당했다.

무리한 방법으로 대한제국을 근대화하고자 했던 아버지 때문에 어린 우장춘은 친일 매국노의 자식이라는 놀림을 받았다. 더욱이 일본인에게는 조선인이라는 멸시까지 받으면서 성장해야 했다. 아버지가 없는 극빈한 가정형편으로 도쿄의 어느 고아원에 들어갔다가 어머니를 따라 히로시마[廣島]로 이사했다.

그는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어머니가 일깨워준 '밟혀도 꽃이 피는 길가의 민들레처럼'이라는 말을 신념으로 육종학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1916년 동경제국대학 실과(東京帝國大學實科)의 농학과 청강생으로 입학하여 1919년에 졸업했다. 1923년 일본 여성 와타나베 고하루[渡邊小春]와 결혼했는데, 당시 고하루의 집안에서는 결혼을 강하게 반대했다.

1919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 취업하여 1년 후 기수(技手)가 되고 육종학(育種學) 연구에 착수했다. 마침내 1930년 겹꽃 페튜니아(Petunia) 꽃의 육종합성 성공으로 인정받는 연구자가 되었다.
이어 유채와 배추과 작물의 게놈(Genome)을 분석했고 세계 최초로 자연종을 합성하여 새로운 종을 만들어내는 종(種)의 합성설(合成說)로 1936년 동경제국대학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때의 박사학위 논문으로 우장춘은 유전육종학자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조국의 품에서 농업혁명을 이끈 우장춘 박사

해방 후 한국은 극심한 가난으로 배고픔에 시달리는 형편이었기에 세계적인 육종학자의 도움이 절실했다. 1947년 '우장춘 환국추진운동'이 일어났고 그 결과 1백만 엔을 모금하여 우장춘에게 전했다. 1950년 3월 우장춘은 일본에서 쌓아올린 모든 명성과 명예를 버리고 귀국하여 한국농업연구소장에 취임했다.

정부에서는 그에게 농림부 장관직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그는 과학자로서 육종사업과 후진양성에만 전념했다. 이런 노력과 지식을 바탕으로 그때까지만 해도 거의 일본에 의존하던 채소 종자를 국내에서 완전히 자급할 수 있게 되었다.
우장춘의 대표적 업적은 채소 종자의 국내 자급 해결 외에 무균종서(無菌種薯) 생산으로 6·25전쟁 이후의 식량난을 해결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 사망 전에는 「수도이기작(水稻二期作)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세상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1957년 부산시 제1회 문화상 과학부문상을 받았고, 1958년 농사원 원예시험장의 수장이 되었다.

농업 1번지 수원의 여기산에 잠든 '씨 없는 수박의 발명가'

우장춘 박사는 귀국한 지 9년이 되던 1959년 8월 10일 지병으로 사망했다. 그가 사망하자 정부는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수여했고, 그의 장례는 전국민의 애도 속에 윤일선(尹日善)을 위원장으로 하는 사회장으로 진행되었다.
'씨 없는 수박의 발명가'로 익히 알려진 우장춘의 유해는 그가 남긴 농업사의 굵직한 업적에 따라 농업1번지인 수원농사원(현 농촌진흥청) 구내의 여기산(麗岐山)에 안장되었다. 수원의 서쪽에 위치한 여기산은 축만제(현, 서호)와 넓은 둔전(국영농지)을 앞에 펼치고 있다.

우장춘 사망(동아일보, 19590810)

우장춘 사망(동아일보, 19590810)

우장춘박사 묘

우장춘박사 묘

조선시대 정조의 신도시 수원 건설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이곳이다. 여기산과 축만제 그리고 대규모 국영농지는 수원이 자생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근간이 되었으며, 이후 우리나라 농업의 중심지로 우뚝 설 수 있게 했다. 또한 여기산은 선사시대 유적지가 있는 곳이며, 백로의 서식지이기도 하여 역사 문화적으로도, 자연 환경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곳이다.

사실 '씨 없는 수박'을 처음 만든 사람은 일본인 기하라 히토시(木原均, 1898~1986)이다. 그는 1943년에 씨 없는 수박을 만들었는데, 우장춘 박사가 1952년 이를 한국에서 만들어 시연했기에 우리에게는 '씨 없는 수박을 최초로 만든 사람'으로 인식된 것이다. 당시 우장춘 박사가 '씨 없는 수박'을 재배한 이유는 농민들에게 유전자 조작을 통한 육종에 대한 눈을 뜨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장춘 박사는 '씨 없는 수박의 발명가'로 기억될 정도로 한국 농업사에 있어서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런 이유로 그는 조선후기 정조대 이래 농업1번지로 손꼽히는 수원 땅에 잠든 것이다. 그의 묘역 안에는 추모비와 동상이 건립되어 있고, 매년 8월 10일이면 그가 양성한 제자들과 전국의 원예인들이 모여 추모의 예를 올린다.

여기산

여기산

출처 : 수원문화원 - 수원을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