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균 / 경기문화연구원장

수원 시장의 대명사 영동시장

영동시장은 팔달문 일대에 산재한 시장 가운데 맏형이다. 화성을 건설할 때부터 지속되었으므로 200년이 훌쩍 넘는 시장이다.
1894년 발행된 《기전읍지》에 남암문 바깥의 남문외장으로 기록되었고, 이후 남문밖시장, 성외시장 등으로 불리며 4일과 9일에 장이 서는 수원의 대표적인 장터였다. 수원시민은 물론이고 오산과 용인 및 안산 등지에서도 찾아올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영정시장(榮町市場)이라고 하였다가 광복 후인 1949년 영동시장으로 바뀌었다.

1973년 6월 21일 영동시장

1973년 6월 21일 영동시장

1980년대 남문시장

1980년대 남문시장

2000년 영동시장

2000년 영동시장

1970, 80년대 전성기에는 300개가 넘는 점포가 즐비했는데 이 가운데 100곳 남짓은 한복점포였다. 서울을 빼고는 당대 최고의 한복시장이었지만 지금은 전체 170여 개의 점포 중 한복점포는 40여 곳에 불과하다. 그래도 의류며 포목, 식품 잡화 등 다양한 상품이 팔리는 시장이다.

수원에서 백화점이 처음 들어선 곳도 영동시장 주변이고, 장례물품을 팔던 대규모의 상포집도 바로 이웃이다. 또 개울 건너에 지동시장과 못골시장, 미나리꽝시장 등이 들어서게 하는 여파까지 생겼다. 더구나 팔달문 앞으로 나가면 전국에서 알아주던 보건약국이 자리를 잡아서 장날마다 약 사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기도 하였다. 또 이 보건약국으로 인해 그 주변이 대형의 약국들이 포진하는 결과도 낳았다.

수여선을 아시나요?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곡식의 수탈을 위해 수원 여주 사이 수여선 협궤철로를 놓았다. 1930년에 개통했는데 사철인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가 주관했다. 수원역에서 출발하여 지금의 뉴코아백화점 앞 본수원역(뒤에 화성역으로 바꿈)과 원천, 신갈, 어정, 용인, 양지, 오천, 이천, 여주 등을 오갔다.

처음에는 용인과 이천, 여주 등의 곡창지대 쌀을 수원역에서 경부선을 이용하여 서울로 실어갔다. 그러다가 1937년에 개통한 수원과 인천 사이의 수인선으로 옮겨 실어 인천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한 것이다. 수탈의 목적으로 본다면 최적의 운반로라고 하겠다.

광복 뒤 화성역(본수원역)은 자연스레 이 전통을 이어받아 영동시장에 싸전이 활성화되는 계기로 삼았다. 영동시장이 떠들썩하게 호황을 누리던 시절도 그때였다. 50, 60년대와 70년대 번성기에는 60여 개의 점포가 경기 남부지방의 곡식을 좌우하며 성업했던 곳이다.

80년대만 하더라도 싸전거리엔 아침마다 활기가 넘쳤다. 경기도의 쌀값은 이 싸전거리에서 좌우된다고 할 정도였다. 거리 전체에 쌀가마니가 산처럼 쌓였으며 힘깨나 쓰는 인부들이 이리저리로 분주하게 옮겼다. 이즈음 비둘기며 참새들도 한몫을 하여 떼로 몰려들었다. 싸전거리에 흩어진 쌀과 상인들이 흘린 싸라기를 주워 먹느라 북새통을 더했다.

싸전거리 초라한 모습의 거북산당

거북산당

거북산당

싸전거리에는 지금 미곡상 한두 집만 남았고 오히려 터를 지키는 것은 수원시 향토유적 제 2호인 거북산당이다. 한때는 수원 민속신앙의 중심이었던 거북산당은 그러나 지금 초라한 상태로 겨우 명목을 유지하고 있다. 가로 4.9미터, 세로 2.5미터 면적 12.25제곱미터여서 겨우 네 평도 채 안 되는 크기이다.

그래도 아직은 이 산당을 지키는 만신이 거주하며 촛불을 밝힌다. 도당할아버지와 할머니 신을 모시고 해마다 음력 7월 7일과 10월 7일에 제사를 지내는데 영동시장 상인들이 주축이다. 지역문화연구소의 정승모 소장은, 도당할아버지는 관우장군의 모습 같다고 하며 관우장군을 모신 당집에는 상인들이 자주 찾아와 복을 빈다고 한다. 우리 민속에서 관우장군은 재물을 안겨주는 신으로 추앙하기 때문이란다.

거북산당은 수원화성을 축조하기 이전인 1790년경에 세웠다고 했는데 처음에는 아마도 새 도시 수원의 구심점이었다가 시장이 활성화 되면서 상인들의 재물 복을 빌어주는 신당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영동시장의 명맥을 이어가는 동생 시장들

거북산당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것처럼 싸전거리도 시들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영동시장도 한적하기만 하다. 대형마트에 비해 주차 등 편의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영동시장은 면적이 넓어서 점포도 많고 그런 이유로 다른 시장보다 가격도 싸지만 편리성에서 대형마트에 뒤진다.

영동시장1

영동시장1

영동시장2

영동시장2

지동시장

지동시장

이를 어찌할 것인가? 70년, 80년 전통을 자랑하는 점포만 하더라도 수십 개를 헤아리고 대를 물려 장사하는 점포 또한 수두룩한 영동시장이다. 그 역사도 수원화성의 역사만큼이나 길고도 중요하다.

그러나 아직은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개울 건너의 못골시장이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와 수원시가 지원한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TV에서 전통시장 보도가 나올 때마다 못골시장 모습과 성공사례가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못골시장 옆의 미나리꽝시장도 생선과 채소 및 기름집 등으로 붐빈다. 또 바로 옆의 지동시장은 순대와 고기 등으로 유명하다.
이제 수원시장의 영화를 되살리는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영동시장이며 못골시장, 미나리꽝시장과 지동시장, 팔달문시장 등이 서로 뭉쳐 한 구역을 이루기 때문이다.

출처 : 수원문화원 - 수원을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