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국 / (사)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 원장
수원은 화장실문화를 선도한 도시다. 화장실문화운동을 통해 수원시를 세계에 알린 데는 '미스터 토일렛(Mr. Toilet)'이 있었다. 그는 바로 심재덕 전 시장이다. 근심을 풀어내는 집, '해우재'에는 세계를 이끈 화장실 혁명이라는 자랑스러운 역사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해우재는 한 사람의 철학과 소신이 얼마나 위대한 결과로 남는지를 보여주는 체험과 깨달음의 현장이 되어 국내외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 화장실의 역사

전통화장실

전통화장실

오늘날 '화장실'은 일반화된 용어다. 하지만 화장실을 왜 화장실이라 하였는지는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려울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화장실'이라는 명칭은 1970년대에서야 공식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1970년대에도 변소와 화장실이란 명칭은 공용되었으며 화장실이라는 말이 보편화된 것은 1980년대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화장실(化粧室)은 한자를 사용하는 아시아인들에게 '화장을 하는 공간'으로 이해된다. 우리나라 화장실의 한자 표기는 파우더 클라짓(powder closet)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파우더 클라짓(powder closet)은 영국 상류층에서 가발에 가루를 뿌리기 위한 공간으로 마련되었고, 가루를 뿌린 뒤 손을 씻어야 하므로 물을 비치하는 공간의 명칭이었다.

해우재(解憂齋)란?

해우재라는 이름은 해우소(解憂所)에서 유래한다. 절간에 가면 화장실을 해우소라 쓴 곳이 많다. 어찌 생각하면 절간에서는 오래 전부터 화장실을 해우소라 명명했을 듯도 하다. 그러나 해우소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통도사 극락암에 계셨던 경봉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세계화장실협회에서 펴낸 『입측오주』에 잘 나타나 있다.

한국전쟁(6․25)이 끝나고 경봉스님은 나무토막에 글씨를 써서 "휴급소(休急所)는 소변 보는 곳에, 해우소(解憂所)는 큰일 보는 데 내걸라"고 했다. 사람들은 '휴급소'를 '급한 것을 쉬어가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그러나 경봉스님의 생각은 달랐다.

"이 세상에서 가장 급한 것이 무엇이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는 일이야. 그런데도 중생들은 화급한 일은 잊어버리고 바쁘지 않은 것을 바쁘다고 그럽디다. 내가 소변 보는 곳을 휴급소라고 한 것은 쓸데없이 바쁜 마음을 그곳에서 쉬어가라는 뜻이야. 그럼, 해우소는 뭐냐. 뱃속에 쓸데없는 것이 들어 있으면 속이 답답해. 근심 걱정이 생겨. 그것을 그곳에서 다 버리라는 거야. 휴급소에 가서 다급한 마음 쉬어가고, 해우소에서 근심 걱정 버리고 가면 그것이 바로 도 닦는 거지."

해우재는 바로 현대인들에게 '바쁜 마음 쉬어가고, 온갖 근심은 내려놓으라.'는 메시지와 '화장실 혁명이 인류의 미래를 바꾼다.'는 인류 공동 번영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하여 2007년에 지은 것이다.

해우재 화장실문화공원

해우재 화장실문화공원

해우재 길목  벽화

해우재 길목 벽화

미스터 토일렛 심재덕

심재덕은 외갓집 뒷간에서 태어났다. 새 생명이 무병장수할 수 있기를 기원하던 옛 어른들의 간절한 소망 때문이었다. 그렇게 태어난 심재덕의 어린 시절 이름은 '개똥이'였다. 그가 세계인의 주목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미스터 토일렛'이 되어 우리 수원시민들의 자랑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면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는 심재덕이 자신의 철학으로 삼은 신념이다. 세계화장실의 문화혁명은 바로 그런 철학에서 시작되었다. 1996년 수원시는 2002년 한․일 월드컵경기를 유치하였다. 온 국민이 밤잠을 설치면서 우리나라 축구선수들을 응원하였고, 세계인에게 한국의 응원문화를 감동으로 보여준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세계인을 감동시킨 것은 우리의 응원문화만이 아니었다. 바로 수원시의 화장실이었다. 수원의 화장실을 경험한 세계인은 감동했고 이는 연일 세계의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다. 수원에서 시작된 화장실 문화혁명은 수원에서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며, 심재덕은 세계를 누비고 다니면서 화장실혁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세계인들은 심재덕의 노력에 감동하였고 드디어 2007년 국제민간기구 세계화장실협회(WTA)가 창립되었다. 그는 세계화장실협회의 초대회장으로 추대되었다.

그런데 세계화장실협회의 창립을 이루고자 동분서주하던 심재덕은 자신의 병을 돌보지 못했다. 그가 병환중임을 알았던 주변사람들의 만류에도 그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2009년 1월 14일 미스터 토일렛은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해우재에서 화장실문화공원으로...

고인의 유지를 받든 유족들은 2009년 해우재를 수원시에 기증, 2010년 수원시 화장실문화 전시관 해우재로 거듭나게 했다. 2011년 해우재는 '어린이 명예기자단'을 모집하여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본격적으로 화장실의 중요함과 물의 소중함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는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일을 합니다. 수확은 후손들이 하게 될 것입니다."를 실천하기 위한 것이었다. 2012년 7월에 개장한 화장실문화공원은 백제, 신라시대 사용하던 변기 등 우리나라 화장실의 다양한 유형과 변천사를 보여준다. 생활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면서 화장실 문화의 중요성도 알리고 있다.

해우재

해우재

해우재 전경

해우재 전경

출처 : 수원문화원 - 수원을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