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자 / 시인
시 속의 수원은 어떤 모습일까? 수원의 표정이 어떻게 나타나고, 어떤 발견과 발상이 수원을 거듭나게 할까? 또 얼마나 많은 시인이 수원을 그렸을지 생각할수록 궁금하다. 시에 등장한 곳이 명소로 뜨는 것을 보면, 시 속의 수원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 그렇다고 수원에 대한 시를 다 볼 수는 없다. 수원 시인들에게는 모든 게 시적 대상이고, 실제로 수원에 대한 시가 많이 나오고 있다. 하여 외지인이 쓴 수원 시편을 중심으로 시 속의 수원을 다시 읽기로 한다.

화성, 사무친 그리움의 꽃

성은 수원의 시에서도 가장 많이 다뤄지는 대상이다. 특히 화성을 쌓은 정조의 시만도 여러 편이니, 현륭원(縣隆園, 사도세자의 묘)을 오갈 때마다 시를 지었던 게다.

지지대비각

혼정신성의 사모함 다하지 못하여
이날에 또 화성을 찾아와 보니
침원엔 가랑비 부슬부슬 내리고
재전에선 방황하는 마음이로다
사흘 밤을 견디기는 어려웠으나
그래도 초상 한 폭은 이루었다오
지지대 길에서 머리 들고 바라보니
바라보는 속에 오운이 일어나누나

첫 줄부터 "혼정신성"(부모의 잠자리를 살피고 새벽 문안을 올리는 예) 못한 아픔이 진하게 배어나오는 시다. 지지대고개에서 돌아보면 오운[사도세자 묘]이 일어나며 눈앞을 가리곤 하던 원행길. '지지대(遲遲臺)'는 수원 땅을 선뜻 뜰 수 없어 머뭇대던 정조의 애끊는 효심이 낳은 이름이다. 이 시와 함께 지지대에 서면 정조의 사무치는 마음과 지극한 효가 깊숙이 와 닿아 우리 마음도 같이 젖는다.
서장대에서 바라보면 가슴이 탁 트이는 수원의 모습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정조가 군사훈련을 살피기도 하던 화성 장대라 위용도 한층 높아 뵌다. 수원 시내를 굽어보는 일품의 눈 맛에 이 시를 얹어 읽으면 더 너른 시야와 기상을 누릴 수 있다. 시와 함께 서장대의 의미와 운치를 뿌듯이 새기며 화성을 다시 본다.

수원천, 고향의 품 혹은 거울

물을 품고 있는 수원, 그 이름에 걸맞은 시로 나혜석의 「냇물」을 지나칠 수 없다. "화홍문 누상(華虹門樓上)에서" 쓴 시에는 그녀의 마음이 애틋이 나타난다.

수원천-빨래하는 사람들 사이로 걸어가는 신여성의 모습이 도드라지는 어느 날(김동휘)

눈 오면 녹여주고
바람 불면 무늬 지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밤부터 새벽까지
춥든지 더웁든지
싫든지 좋든지
언제든지 쉬임없이

외롭게 흐르는 냇물
냇물! 냇물!
저렇게 흘러서
호(湖)되고 강되고 해(海) 되면
흐리던 물 맑아지고
맑던 물 파래지고
퍼렇던 물 짜지고
― 나혜석, 「냇물」 부분

나혜석은 고향 수원천의 물을 보며 어지러운 마음을 가누고는 했나 보다. 첫사랑 최승구를 보내고 쓰린 심정을 가다듬으며, 혹은 변덕스러운 세상사를 물빛에 담아 읽으며, 거기서 위안을 얻기도 했던 게다. 그런 심경이 시의 행간에서도 쓸쓸히 배어나와 수원천을 다시 거닐며 읽게 한다.

수원이 낳은 최초의 여성서양화가이자 페미니스트 작가인 나혜석! 그녀가 자신을 비춰본 화홍문 앞 냇물은 자신을 낳아준 고향의 어머니 같은 물이다. 그래서 수원천은 오늘도 유정하게 흐르고 있는가.

「승무」의 탄생지, 용주사의 기억

사도세자의 원찰인 용주사에서 태어난 시도 있다. "수원 용주사 큰 재(齋)에 승무가 있다"는 말에 달려와 쓴 조지훈의 「승무」(당시 용주사는 수원군에 속했음)가 바로 그 작품이다.

용주사 뜰에 세워놓은 조지훈의 승무 詩碑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중략…)

이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
― 조지훈, 「승무(僧舞)」 부분

당시 최고 춤꾼인 한성준, 최승희에 이어 세 번째 본 용주사 승무는 시인의 마음을 깊이 울렸다. 춤이 끝나도 자리를 뜰 수 없던 시인은 절 뒤 감나무 아래를 오래 서성거렸다. 그렇게 품은 승무는 이듬해 김은호의 그림 「승무도」를 보고 스케치한 후, 12월에야 완성했다고 한다. 명시는 과연 명 사연도 거느리고 있다. 한국시의 고전미적 절창 「승무」의 탄생지인 용주사, 그 뜰에 세운 승무 시비(詩碑) 앞에서 승무의 춤사위를 그려본다. 방문객들도 시비 앞에서 흐뭇이 읊조리다 간다.

시로 더 빛나는 수원을

이 밖에도 수원을 노래한 시는 꽤 많다. 마종기의 「수원에 내리는 눈」, 홍신선의 「수원지방」, 최동호의 「남창초등학교」, 홍일선의 「외로운 이 많을 때 군청집이 있었다」 등도 수원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시편들이다. 이러한 시가 더 풍성히 쌓여갈 때, 수원에서의 나날도 더 많은 문화적 긍지를 낳고 함께하는 즐거움을 높여갈 것이다.
시는 지치고 찌든 마음을 씻어준다. 새로운 눈과 감각도 틔워준다. 많은 발길을 탄생지로 이끌기도 한다. 그러니 수원의 시가 다양할수록 수원의 문하가 한층 풍요로워질 것은 당연하다. 그럴수록 시와 함께하는 수원 산책도 더 그윽하게 누릴 수 있으리라.
출처 : 수원문화원 - 수원을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