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자 / 시인
유명한 소설은 배경도 유명하다. 예컨대 『토지』(박경리 작)는 경남 하동 평사리라는 지역을 현대문학사에 뚜렷하게 되살렸을 뿐만 아니라 관광 명소로도 올려놨다. 그렇다면 수원을 그려낸 소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수원의 삶과 역사와 문화를 어떻게 읽어내며 되살리고 있을까. 소설 속의 수원 찾기라는 설레는 산책을 나서보자.

수원의 든든한 긍지, 화성(華城)

먼저 봐야 할 것은 홍성원의 『먼 동』이다. 근대 초기의 수원과 남양을 무대로 엮어낸 6권의 대하소설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수원은 근대의 역동적인 삶 속에서 찾는 민족의 '먼 동'을 보여준다. 근대의 수원지역 삶을 세세하게 그려서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의 팔달문 주변의 시장과 사람들

일제강점기 때의 팔달문 주변의 시장과 사람들

팔달문의 위풍당당한 모습

팔달문의 위풍당당한 모습

언제 보아도 수원 남문은 그 자태가 단아하고 웅건하다. 아랫자락에 치마처럼 두른 둥근 옹성(甕城)도 아름답지만 이층으로 올린 누문의 처마 선(線)도 서울의 투박한 숭례문(崇禮門)보다는 한결 날렵하고 장하다는 느낌이다. (중략) 인섭은 제가 본 눈대중만으로도 일견 고향 땅 수원성의 팔달문이 서울의 숭례문보다 더 크다는 느낌이다.

팔달문 쪽에서 장안문(長安門) 쪽을 버리고 사내들 셋이 앞뒤로 서서 빠른 걸음으로 길을 따라 올라간다. 길가에 늘어선 수백 채 묵은 초가들이 처마들을 맞대고 들쭉날쭉 기다랗게 잇대어 있다. 성안에서는 가장 크고 번잡한 길이건만, 여러 해에 걸쳐 길가 집들이 넓던 길을 야금야금 갉아먹어 지금은 그 큰길이 하늘만 겨우 보일 정도다.

여기서 특히 반가운 것은 화성과 특정 장소에 대한 작가의 긍지 어린 묘사다. 위 글은 "수원 남문"이 서울 "숭례문보다 한결 날렵하고 장하다"는 자부심으로 더 빛난다. 아래 글은 수원의 중심도로가 변해가는 모습을 세밀하게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증언과 자료를 바탕으로 한 묘사들이 수원의 또 다른 모습을 풍부하게 되살린 것이다. 작가의 고향 사랑과 역사적 감각, 문화재 인식 덕에 얻은 수원의 즐거운 소득이 아닐 수 없다.

 

수원 청춘들의 사랑과 추억

수원천-전후 피란민이 모여살던 수원천의 모습

수원천-전후 피란민이
모여살던 수원천의 모습

김남일의 『청년일기』에도 수원이 자주 등장한다. 청년들의 시대인식과 현실적 문제 에 대한 고뇌 등을 담아낸 수원 출신 소설가의 소설은 이곳을 아는 이들에게 아릿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와이하우스"는 수원의 청년들이 즐겨 찾던 고전음악감상실이다. 좋은 음악에 그림 전시도 가끔 해서 젊은이들의 문화적 욕구를 해소하던 곳이다. 특히 "마담 미스 김"(이상한 호칭은 당시 다방문화의 반영)은 긴 생머리가 매력적인 고전적 미인으로 뭇 남성의 가슴을 흔들었다. 아마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 여인을 보러 와이하우스에 가지 않았을까.

아래 글에는 수원의 옛 모습과 풍속이 여실히 나타난다. 우리의 관심을 더 끄는 것은 수원천에서 냉면을 삶아 "도르래"로 올렸다는 대목이다. 냇물이 아닌 근처 우물에서 삶았을 거라는 증언에 가까운 추정에 끄덕이면서도, 흥미로운 추억이다. 어린 나이에는 정말 입맛이 다셔질 법한 장면이 아닌가.

길태근은 팔달산 아래에 있는 고전음악 감상실 와이하우스를 입에 올렸다. 그곳이라면 따분한 시간을 제법 고상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운이 좋으면 마담 미스 김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잖겠는가 하는 것이 그의 계산이었다.

"지금도 생각나는데, 영동시장 초입에 공설이발관하고 목욕탕이 있었어. 머리에 기계충이 옮는다고 해서 꺼리기는 했지만, 싼 맛에 사람들로 늘 북적거렸지. 우리들은 키가 작으니까 나무판을 팔걸이에 얹어놓고 앉혔지. 물론 머리는 빡빡 밀었지."

아름다움, 그 위로와 정화

김소진의 「용두각을 찾아서」도 수원의 중요한 소설이다. 한국전쟁 직후의 수원 모습 특히 수원천변 묘사는 자료 사진이라도 보고 그린 듯 정밀하기 짝이 없다.

잘 꾸며진 용못을 발치에 두고 있는 용두각은 본래부터 풍류용으로 지어진 게 아닌지 새삼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바람이 건듯 불자 누각 아래 연못가에 머리를 감는 아낙인 듯 휘늘어져 있던 버드나무 가지들이 일제히 출렁거렸다. 시원한 광경이었다.

화성의 제 1경인 방화수류정의 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화자는 어머니가 전후를 보낸 "용두각"[방화수류정]을 찾아, 그 아름다움에 어머니가 "에는 가슴을 달랬을" 것이라고 여긴다. 방화수류정은 수원의 제1경으로 일제강점기 엽서에도 담긴 곳이지만, 일품의 경치로 피란 온 외지인의 마음까지 눅여주었던 것이다. 소설에서 보여주듯, 아름다움은 각박한 삶을 위로하는 좋은 힘이 된다. 우리도 가끔 방화수류정에 올라 지친 마음을 씻는데, 그때마다 한국전쟁 후의 피란민 삶이 담긴 이 소설을 떠올려보는 것도 좋겠다.

소설은 우리에게 수원의 또 다른 삶과 풍경과 내면을 보여준다. 백도기의 「자전거 타는 여자」, 박덕규의 「세 사람」, 함정임의 『춘하추동』 등도 수원의 다른 모습과 꿈을 담아내는 소설이다. 앞으로는 수원을 그린 소설이 더 다양하게 나오리라 기대한다. 화성을 다녀간 사람들이 쓰려니 믿고 싶은 글도 꽤 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그 작품들이 수원의 소중한 문화적 자산으로 축적될 것이다. 그때는 소설 속 수원 산책도 한결 풍성하게 즐기며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수원문화원 - 수원을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