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규 / 시인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

사랑방손님과 어머님 포스터

사랑방손님과 어머님 포스터

최근 들어 수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특히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 화성이 사극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는 친근함과 감탄을 동시에 자아낸다. "어, 저기 수원 아냐?"하고 말이다.

<대장금>(2003~2004), <왕과 나>(2007~2008), <이산>(2007~2008), <추노>(2010) 등의 사극 드라마를 비롯하여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클래식>(2003), <청풍명월>(2003), <왕의 남자>(2005), <가족의 탄생>(2006), <괴물>(2006), <7급 공무원>(2009), <강철대오>(2012) 등이 수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다.

이 가운데서 사극 드라마나 사극 영화가 문화유산인 수원 화성을 배경으로 촬영한다는 것은 충분히 납득이 갈 만한 일이지만, 현재를 시점으로 한 영화가 수원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에는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굳이 수원을 작품의 배경으로 한 이유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가 현재 살고 있거나 과거에 살았던 지역이 한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이 된다면 더욱더 친근감을 갖고 작품을 보게 된다. 저 인물이 서 있는 곳이 내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그 작품은 나의 이야기가 되고, 인물은 나와 가까운 사람이 된다.

사랑방부터 강철대오까지

영화배경의 화성행궁 공방거리

영화배경의 화성행궁 공방거리

1035년 <조광> 창간호에 발표된 주요섭의 단편소설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1961년 신상옥 감독이 '방'자를 넣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으로 영화화되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배경이 바로 수원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생각보다 드물다. 혹시 궁금하다면, 화성행궁 공방거리에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촬영 장소'라는 안내판을 찾아보시길. 배경이 된 집의 주인이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으니 담 넘어 영화의 배경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사극 드라마나 영화는 화성행궁이나 화성 성곽을 배경으로 촬영한 것이 많다. 특히 <왕의 남자>에서 연산(정진영 분)과 광대들이 함께 유희를 즐기는 컷의 배경이 화성행궁 안이며, 광대 육갑(유해진 분)의 시신을 버리러 가는 장면의 배경은 서남암문이다.

이외에도 사극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으로 화성행궁이 자주 등장한다. 또한 화성이 복원되면서 화성행궁을 비롯하여 성곽을 따라 난 길이 사극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보다 더 좋은 세트장은 없기 때문이다.

「왕의 남자」를 촬영한 수원 화성행궁

「왕의 남자」를 촬영한 수원 화성행궁

왕의 남자에서 욱감의 시신을 버리러 가는 장면, 수원 화성 서남암문

「왕의 남자」에서 욱감의 시신을 버리러 가는 장면, 수원 화성 서남암문

이뿐이 아니다. 영화 <클래식>에서 주희(손예진 분)와 준하(조승우 분)가 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곳이 수원이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수원화방, 화성문구, 삼성전자 등 길거리 간판은 물론이고 현수막 문구 모두 고증을 거쳐 그 당시의 수원을 재현한 장면들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전보를 주고받았던 '수원우체국'이 기억나시는지-.

「클래식」에 나오는 수원우체국 주변 모습

「클래식」에 나오는 수원우체국 주변 모습

<가족의 탄생>에서는 선경(공효진 분)이 화성행궁에서 일본 관광객 가이드 일을 하고 있는데, 화성행궁이 배경으로 여러 번 등장해 우리에게 반가움을 준다. 또한 <7급 공무원>에서 수지(김하늘 분)의 마지막 결투신의 배경은 화성 동북공심돈이었으며, <괴물>에서 양궁선수 남주(배두나)는 등에 '수원시청' 마크를 달고 있다. 가장 최근에 개봉한 영화 <강철대오>의 마지막 장면에서 대오(김인권 분)와 예린(유다인 분)이 작별인사를 하는 장면의 배경도 고등동에서 수원역으로 가는 대로변이다.

「7급 공무원」에서 서북각루가 보이는 화서공원

「7급 공무원」에서 서북각루가 보이는 화서공원

이러한 낯익음을 통해 우리는 이 영화들의 배경이 모두 수원에서 촬영된 것은 아닐까 하는 조금은 지나친 상상을 해본다. 혹시나 미라(<가족의 탄생>, 문소리 분)의 녹색 양철대문 집이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집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가족의 탄생

가족의 탄생

영화 속 수원, 수원 속 영화

그렇다면 영화 속 배경으로 드러나는 수원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영화 속의 공간이 이제 나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화면 속에 내가 살던 곳이 나오면서, 우리는 이제 영화 속 공간에 우리의 삶을 투영시키는 동시에 우리 삶의 공간에 영화를 투영시킨다. 영화 속 인물들이 모두 모여 있는 풍경이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옆집 혹은 우리 동네가 될 수 있으리라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다시 영화 밖의 현실로 돌아오며 '나는 어떤 영화의 어떤 유형일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이른바 '영화놀이'가 시작된다.

결국 영화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수원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심리적 공간이다. 처음에는 공통된 물리적 공간에서 친밀감과 공감이 형성되지만, 이것은 결국 심리적 공간에 가 닿는다. 이것이 영화 속 수원이자, 수원 속 영화가 되는 것이다. 단순히 수원이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고 해서 영화에 공감이 가는 것은 아니다. 그 공간에 우리 자신을 투영시키면서 동시에 우리의 현실에 영화를 투영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화를 좀 더 깊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영화들을 좀 더 매력 있게 그리고 깊게 '영화놀이'를 해가며 볼 수 있도록 수원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많이 나왔으면 싶다. 그런 게 바로 영화 속 수원을 우리의 소망이 아닐까.

출처 : 수원문화원 - 수원을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