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국 / (사)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 원장
민속은 민간의 풍속을 줄여 부르는 말로 지역마다 그 특성엔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민속은 이렇다' 단정하여 말할 수는 없다. 남부지방과 중부, 북부지방의 민속은 그런 점에서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다고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문화든 민속이든 획일적으로는 단정할 수 없으며 단정해서도 안 된다는 말이다. 민속은 인문지리적 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러므로 수원의 민속을 이해하는 일도 수원의 지리적 환경의 변화를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예로 고색동은 농업이 주된 생산수단이었던 시절부터 화성시 기배동과 들판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러하기에 민속의 관점에서 고색동농악의 가락은 수원의 다른 지역보다도 기안리나 봉담읍 역말가락과 유사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시각에서 수원의 민속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영통청명단오제

영통청명단오제

수원민속의 이모저모

민속은 매우 다양하며 일상사의 모든 것이 그 범위 안에 존재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절간에 모셔진 미륵불도 마찬가지이다. 칠보산 용화사의 미륵불도 아주 오래전에는 민간신앙의 대상이었다. 파장동 법화당의 미륵불도 그러하다. 숙지산과 고양골 사이 동래정씨 집안에서 모시던 약사불도 역시 민간에 의해 소원을 기원하고 어려움을 호소하던 대상이었다.

지금은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파장동의 장승과 율전동의 장승, 동남보건대학 앞 벌판에 있던 장승과 솟대, 천천동의 언덕에 있었던 장승 역시 민간에 전하는 신앙의 대상이었으며 또한 이정표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현재 세류동 정조사거리에 서 있는 장승은 비행장 쪽 미영아파트 세 갈래 길에 있던 장승과 함께 이정표로서의 기능을 하면서 여행길에서의 무사함을 기원하던 대상이었다.

어기 영차, 줄을 당겨라!

평동(고색동 큰말) 줄다리기 전 고사

평동(고색동 큰말) 줄다리기 전 고사

줄다리기의 기원에 대한 기록은 당나라시절로 오(吳)나라와 초(楚)나라의 싸움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에서의 기록은 1481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서 찾을 수 있다. 줄다리기는 풍농을 기원하는 의미로 행하여진 민속이다. 줄다리기의 줄은 뱀 혹은 용을 상징한다. 농사에서 가장 긴요한 것은 무엇보다 농업용수일 것이다. 그런데 수리시설이 갖추어지지 못했던 시절, 옛 사람들은 '비는 용이 구름을 움직여 내리게 한다.'고 생각하였고, 용을 상징하는 줄을 당겨오는 편의 농사가 잘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마을단위에서 행하는 줄다리기의 경우 그 승패는 미리 정하여진다. 보통의 줄다리기는 여성과 남성이 편을 갈라 겨루게 되는데 언제나 승리는 여성들의 몫이다.

땅을 상징하는 여성들의 승리가 풍요로운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재 수원시에 전하는 줄다리기는 고색동 큰말이 대표적이다. 고색동의 줄다리기 역시 승리는 언제나 여성의 몫이다. 고색동 줄다리기는 전하는 기록이 없어 그 유래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1796년 수원화성 축성 이후 양반과 농민들이 풍농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뜻에서 행하였다고 입에서 입으로 전하고 있다. 한편 고색동 주민들에게 줄다리기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정월대보름의 행사였다. 일제강점기, 주민들의 화합을 꺼리던 일본은 줄다리기와 같은 공동체 풍속을 금지시켰다. 그럼에도 고색동 주민들은 일본인들의 눈을 피해 밤에 몰래 횃불을 밝히고 줄다리기의 명맥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1980년대 중반부터 1994년까지 그 명맥이 끊겼다가 1995년 동민 및 청년회를 중심으로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밖에도 이의동 길마재마을과 용인시 상현리 독바위마을 사람들 간에 행하였던 줄다리기와 고색동과 평동의 벌말 그리고 세류동이 함께 하였다는 줄다리기 등이 수원을 대표하던 줄다리기였다.

평동 벌말 도당굿

평동 벌말 도당굿

고색동 큰말

고색동 큰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공동의 소망을 기원하다

삶의 터전을 공유한 이들이 공동의 소망을 기원하던 공동체 신앙인 마을굿과 마을제사는 수원의 여러 마을에서 행해졌으며 현재에도 왕성하게 전승되고 있다.

수원의 공동체 신앙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 부부를 신격으로 모시고 있는 곳이 많다는 점이다. 영동시장 내에 있는 거북산당, 평동의 벌말, 평동의 고색동 큰말 등이 경순왕 신격을 모시고 있다. 이 가운데 음력 1월에 행하는 벌말의 도당굿이 중심에 있다. 수원에서 왜 경순왕을 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필자는 시흥시 군자봉에서 기내림을 받은 두레패가 걸립을 다니던 행로에서 기인되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밖에 유교식 마을제의로는 세류3동의 산제당 제사가 있다. 못골의 호신당과 함께 산신인 호랑이를 위하던 세류3동의 산제당에서는 매년 음력 시월 초하루 마을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제의를 거행하고 있다.
한편 청명의 단오제는 음력 5월 5일을 전후하여 행하여진다는 점에서 보통의 마을신앙이 정월대보름과 음력 시월 초하루를 기점으로 행하여지는 마을제의와 차이를 보인다. 그런데 영통 청명마을의 단오제는 그 유래가 오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출처 : 수원문화원 - 수원을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