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역의 독립운동가 안내 표(사진, 내용을 안내를 시작합니다.)
김세환 사진 김세환(1888. 11. 18 ~ 1945. 9. 16)-독립장
수원지역 대표적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


수원면 남수리에서 태어나, “조국의 독립을 성취하는데 이바지하려면 먼저 새로운 학문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삼일여학교(지금의 매향중학교)에서 학생들의 교육에 힘썼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48인의 한명으로 수원지역의 3․1운동을 독려하고, 3월 13일 서울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약 1년 동안의 옥고를 치렀다. 이후 수원에서 교육 및 사회활동에 앞장섰다.
나혜석 사진 이하영(1872. ~ 1952.)-건국포장
수원의 기독교 민족운동가


수원에서 태어난 근대 수원의 대표적인 민족운동가로 대한제국기에는 삼일학교를 설립하고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19년 3․1운동 당시 평남 진남포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렀다.
이선경 사진 이선경(1902.5.25.~1921.4.21)-애국장
'수원의 유관순'으로 순국한 소녀


수원면 산루리에서 태어나, 수원공립보통학교(현 신풍초등학교)를 졸업하고 3․1운동 당시 김세환의 밑에서 연락 임무를 담당하였다. 조선의 독립을 목표로 한 ‘구국민단’을 박선태 등과 결성하여 비밀리에 활동하다 일제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혹독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19살의 나이에 순국하였다.
김향화 사진 김향화(1897. 7. 16 ~ 미상)-대통령표창
의로운 기생, 꽃중의 꽃


3․1운동이 일어나기 전 수원기생들은 고종황제가 돌아가심을 누구보다도 슬퍼하며 대한문 앞에서 망곡을 하고, 1919년 3월 29일 자혜의원(현 화성행궁 봉수당)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이때 수원기생 30여명을 이끌며 일제의 총칼에 항거하며 만세를 부르다 체포되어 징역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김노적 사진 조안득(1910.~ 미상)-애국장
우가키 총독 처단 미수


수원면 매산리에서 태어나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본격화되던 1935년 우가키 총독을 암살하고자 사전에 폭탄을 제조하고 처단 예행연습을 하다 사전에 발간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장성 사진 김장성(1913.2.7.~1932.3.9.)-애족장
수원소년동맹의 화신


수원면 산루리에서 태어나 수원지역의 청년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 수원청년동맹 산하의 수원소년동맹의 맹원이었던 홍종근(18세)과 1930년 10월 12일이 화성학원의 운동회가 개최되어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을 예상하고 민족적 대중투쟁을 선도하는 격문을 살포하며 독립의 의지를 불태우다 체포되어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만기출옥을 20여일 앞두고 출옥한 뒤 1개월만에 순국하였다.
박선태 사진 박선태(1901.~1938.)-애족장
구국민단의 선봉


수원면 산루리 출신으로 휘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9월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상해로 가려다가 삼일학교 교사 이종상을 만나 국내에서 항일투쟁을 펴기로 계획을 변경하고, 1920년 6월 20일 비밀결사 구국민단을 조직하여 단장으로서 활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혈복단으로 명칭을 바꾸고 독립운동 방침을 협의하는 등 활동하다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징역2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임면수 사진 임면수(1874. 6.13 ~ 1930.11.29.)-애족장
신민회 독립운동기지 경기도 대표


수원지역의 대표적인 근대교육가이자 독립운동가로 삼일학교 설립자이며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중국 만주로 건너가 유하현 삼원보의 독립운동 기지의 경기도 대표로 활동하며 개척사업과 신흥무관학교 개설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그리고 통화현 합니하에 설립된 민족학교 양성중학교 교장으로 활동하며 독립군 양성에 기여하였고, 1910년대 중반에는 부민단의 결사대에 소속되어 활동하였으며, 3․1운동 이후 통화현에서 해룡현으로 근거지를 옮겨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체포 투옥되었다.
홍종철 사진 홍종철(홍순철, 1920. 3. 26 ~ 1989. 7. 22)-애족장
수원예술호연구락부 사건 주도


수원면 인계리에서 태어나 1939년 10월 사회주의 청년 최용범, 차준철, 김길준, 맹승재, 강성문, 용헌식 등과 ‘수원예술호연구락부(水原藝術互硏俱樂部)’를 결성하였다. 이들 청년들은 국내 및 만주, 동경의 독립운동가와 연계하여 식민통치 체제의 비판, 민족차별과 조국독립, 공산주의 사회제도의 실현 등을 위해 활동하다 결국 체포되어 징역2년의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