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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수원화성

  • 세계문화유산 역사적 가치 수원화성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사적 제3호)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 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 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 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정조 18년(1794년)에 축성공사를 시작, 2년 뒤인 1796년에 완공했으며 정약용이 성을 설계하였습니다.
    수원화성은 거중기, 활차, 녹로 등 신기재의 발명과 활용, 동서양 축성술을 집약한 축성방법 등 18세기 과학과 건축, 예술을 살필 수 있는 대한민국 성곽 건축사상 가장 독보적인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수원화성」은 방어 기능과 성벽안에 갖추어진 4개의 성문을 비롯해 각기 다른 모양과 특성을 지닌 건축물의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으뜸 관광 명소’, ‘CNN선정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곳 50곳’, 2012 한국관광을 빛낸 ‘한국관광의 별’ 로 선정되는 등 한국 전통역사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 01. 팔달문(八達門)
  • 02. 남수문(南水門)
  • 03. 동남각루(東南角樓)
  • 04. 동삼치(東三雉)
  • 05. 동이포루(東二舖樓)
  • 06. 봉돈(烽墩)
  • 07. 동이치(東二雉)
  • 08. 동포루(東砲樓)
  • 09. 동일치(東一雉)
  • 10. 동일포루(東一舖樓)
  • 11. 창룡문(蒼龍門)
  • 12. 동북노대(東北弩臺)
  • 13.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
  • 14. 동장대(東將臺) - 연무대
  • 15. 동암문(東暗門)
  • 16. 동북포루(東北舖樓)
  • 17. 북암문(北暗門)
  • 18. 동북각루(東北角樓)
  • 19. 북수문(北水門) - 화홍문
  • 20. 북동포루(北東砲樓)
  • 21. 북동치(北東雉)
  • 22. 북동적대(北東敵臺)
  • 23. 장안문(長安門)
  • 24. 북서적대(北西敵臺)
  • 25. 북서포루(北西砲樓)
  • 26. 북포루(北舖樓)
  • 27.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 28. 화서문(華西門)
  • 29. 서북각루(西北角樓)
  • 30. 서일치(西一雉)
  • 31. 서포루(西砲樓)
  • 32. 서이치(西二雉)
  • 33. 서노대(西弩臺)
  • 34. 서장대(西將臺)
  • 35. 서암문(西暗門)
  • 36. 서포루(西舖樓)
  • 37. 서삼치(西三雉)
  • 38. 서남암문(西南暗門)
  • 39. 서남각루(西南角樓)
  • 40. 남포루(南砲樓)
  • 41. 남치(南雉)
    • 팔달문(八達門)
    • 01. 팔달문(八達門)

      팔달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남쪽 문으로 남쪽에서 수원으로 진입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정조대왕과 당대 국왕들이 현륭원을 가기 위해 이곳을 통과했다고 합니다.
      1794년(정조 18)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15일에 완공하였습니다.
      팔달문은 모든 곳으로 통한다는 '사통팔달'에서 비롯한 이름이며 축성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제40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 남수문(南水門)
    • 02. 남수문(南水門)

      남수문은 수원천이 화홍문에서 남쪽으로 흘러 내려와 성곽과 다시 만나는 지점에 만든 수문입니다.
      수원천 하류 수량증가에 대비하여 9개의 홍예수문으로 되어 있으며 수문 위에는 성밖 적들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포사가 세워져 있어 비상시에는 군사들이 대기 하거나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남수문 복원을 위해 지난 2004년 남수문터에 대한 발굴조사에 나섰고, 2012년 6월 복원을 완료하였습니다.

    • 동남각루(東南角樓)
    • 03. 동남각루(東南角樓)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건물입니다.
      비상시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도 하였습니다.
      동남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 중 성 안팎의 시야가 가장 넓은 곳입니다.
      남수문 방면의 방어를 위하여 남공심돈과 마주보며 군사를 지휘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 동삼치(東三雉)
    • 04. 동삼치(東三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입니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습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동삼치는 동이포루와 동남각루의 중간지점에 있습니다.

    • 동이포루(東二舖樓)
    • 05. 동이포루(東二舖樓)

      포루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음 목조건물이며 초소나 군사대기소와 같은 곳입니다.
      동이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 (정조 20)7월 3일에 완공되었습니다.
      평탄하고 넓은 지형에 위치하고 있으며 봉돈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하였습니다.
      서북쪽의 포루와 다르게 성벽에서 많이 돌출되었으며 판문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 봉돈(烽墩)
    • 06. 봉돈(烽墩)

      1796년 6월 17일 완성된 수원 화성 봉돈(烽墩)은 일반적인 봉수대(烽燧臺)가 주변을 잘 살필 수 있는 산 정상에 별도의 시설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화성 성벽에 맞물려 벽돌로 만든 것이 특징입니다.
      우리나라 성곽 양식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으로 마치 예술작품처럼 정교하게 만든 수원화성의 대표시설입니다.
      평상시 남쪽 첫 번째 화두(火竇: 횃불구멍)에서 횃불이나 연기를 올려 용인 석성산과 흥천대 봉화로 신호를 보냅니다.

    • 동이치(東二雉)
    • 07. 동이치(東二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입니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습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동이치는 동포루(東砲樓)와 봉돈의 중간 지점에 있습니다.

    • 동포루(東砲樓)
    • 08. 동포루(東砲樓)

      동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동쪽 동일치와 동이치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 (정조20) 7월 16일에 완공되었습니다.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로 치성의 발전된 형태입니다.
      화성의 포루는 모두 벽돌을 사용하여 만들었으며 공심돈과 같이 안을 비워 적을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공격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 동일치(東一雉)
    • 09. 동일치(東一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입니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습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동일치는 동일포루에서 봉돈 쪽으로 125보(148m)의 거리에 있습니다.

    • 동일포루(東一舖樓)
    • 10. 동일포루(東一舖樓)

      포루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초소나 군사대기소와 같은 곳입니다.
      동일 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정조20) 7월 10일 완공되었습니다.
      평탄하고 넓은 지형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북쪽의 포루와 다르게 성벽에서 많이 돌출 되었으며 판문이 설치되어있지 않습니다.

    • 창룡문(蒼龍門)
    • 11. 창룡문(蒼龍門)

      창룡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동쪽 문으로 1795년(정조19) 5월 8일 공사를 시작하여 10월 17일 마쳤습니다.
      창룡은 곧 청룡으로 풍수지리상 좌청룡이며 동쪽을 의미합니다.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옹성을 반달모양으로 쌓았는데 장안문, 팔달문과 달리 한쪽을 열어놓았습니다.
      옹성 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는 공사를 담당하였던 사람과 책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 동북노대(東北弩臺)
    • 12. 동북노대(東北弩臺)

      동북노대는 창룡문의 북쪽 96보의 거리에 있습니다.
      치(雉) 위에 벽돌을 쌓아 대(臺)를 만들었는데, 대 아래의 석축 높이 13척, 대의 높이 18척입니다.
      벽돌로 쌓는 방식은 사각형이지만 모서리를 깎아 벌의 허리처럼 만들어서 모를 죽였습니다. 안쪽 너비 17척 4촌, 바깥쪽 너비 19척, 성밖으로 나온 부분이 25척 5촌, 2개의 현안을 뚫었고, 위에 둥근 여장을 만들었습니다.

    •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
    • 13.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

      동북공심돈은 노대의 서쪽 60보쯤 되는 거리에 있습니다.
      성탁(城托)의 위 성가퀴 안에, 요동(遼東)에 있는 계평돈(平墩)을 본떠서, 벽돌로 쌓아서 둥그렇게 돈(墩)을 만들었는데, 겹으로 둘렀습니다.
      높이 17척 5촌, 바깥 원 둘레 122 척, 벽돌로 된 부분의 두께 4척, 안쪽 원 둘레 71척, 내원과 외원 사이에 가운데 4척 5촌의 공간을 비워두고, 2 층 덮개판으로 둘렀습니다. 아래 층 높이 7척 3촌, 가운데 층 높이 6척 5촌인데, 모두 군사들의 몸을 숨길 수 있게 하였습니다.

    • 동장대(東將臺) - 연무대
    • 14. 동장대(東將臺) - 연무대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머물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입니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습니다.
      동장대는 1795년(정조 19) 7월 15일 공사를 시작하여 8월 25일 완공되었습니다.
      무예를 수련하는 공간이었기에 연무대(鍊武臺)라고 하였습니다.
      이곳의 지형은 높지 않지만 사방이 트여 있고 등성이가 솟아 있어서 화성의 동쪽에서 성 안을 살펴보기에 가장 좋은 곳입니다.

    • 동암문(東暗門)
    • 15. 동암문(東暗門)

      동암문은 동장대 서쪽 166보 되는 곳에 있습니다.
      동쪽에 자리잡고 북쪽을 향하여 있으며 벽돌로 안과 밖의 홍예를 만들어 말 한필이 지나갈 수 있습니다.
      안쪽 너비는 7척 높이는 8척이고 바깥은 너비가 6척, 높이가 7척 5촌입니다. 문 위는 벽돌을 깔았고 누는 세우지 않았습니다.
      다만 오성지와 한 개의 큰 둥근 여장을 설치하였는데 마치 나무로 만든 전붕(戰棚)의 제도와 같습니다.

    • 동북포루(東北舖樓)
    • 16. 동북포루(東北舖樓)

      동북포루(東北鋪樓)는 각건대(角巾臺)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방화수류정 동쪽 135보 4척쯤 되는 거리에 있습니다.
      지세가 별안간 높아져서 용두(龍頭)를 눌러 굽어보고 있습니다.
      『성서(城書)』에 이르기를, "치성의 위에 지은 집을 포(鋪)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치성에 있는 군사들을 가려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치성이 성 밖으로 18척 5촌이 튀어 나왔는데, 외면의 너비는 24척이고, 현안(懸眼) 1구멍을 뚫었다. 5량으로 집을 지었는데, 판자를 깔아 누를 만들었습니다.

    • 북암문(北暗門)
    • 17. 북암문(北暗門)

      북암문은 동북각루의 동쪽 40보 되는 벽돌로 쌓은 성 사이에 있습니다.
      안과 밖의 홍예 역시 벽돌로 쌓았습니다.
      안쪽은 너비가 4척 6촌 높이가 6척 5촌이고, 바깥 쪽은 너비가 4척 높이가 6척입니다.
      문위에는 둥근 여장을 설치했는데 제도는 동암문과 같습니다.
      홍예 사이에는 돌계단을 설치하여 들어가는 곳은 높고 나오는 곳은 낮게 만들었는데, 지세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 동북각루(東北角樓)
    • 18. 동북각루(東北角樓)

      방화수류정은 1794년(정조 18) 10월 19일 완공되었습니다.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訪花隨柳)”라는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은 독특한 평면과 지붕형태때문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화성에서 가장 뛰어나며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 북수문(北水門) - 화홍문
    • 19. 북수문(北水門) - 화홍문

      화성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수원천 위에는 북수문과 남수문 두 개의 수문이 있습니다.
      북수문은 1794년(정조 18)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5년(정조 19) 1월 13일에 완성되었습니다.
      별칭은 화홍문으로 화(華)자는 화성을 의미하고, 홍(虹)자는 무지개를 뜻합니다.
      장쾌한 물보라가 수문으로 넘쳐나는 모습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 북동포루(北東砲樓)
    • 20. 북동포루(北東砲樓)

      북동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砲樓) 중 장안문과 화홍문 사이인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4년(정조 18) 9월 23일에 완공되었습니다.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火砲)를 쏠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의 발전된 형태입니다.

    • 북동치(北東雉)
    • 21. 북동치(北東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입니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습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북동치는 북동적대 바로 옆으로 적대와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 북동적대(北東敵臺)
    • 22. 북동적대(北東敵臺)

      적대는 성문과 옹성에 접근하는 적을 막기 위해 성문의 좌우에 설치한 방어 시설물입니다.
      포루와 치성은 성곽밖으로 완전히 돌출된 반면 이 적대는 시설물의 반만 외부로 돌출되고 반은 성안으로 돌출되어 있습니다.
      적대는 성곽보다 높게 만들어서 적군의 동태와 접근을 감시하였으며 총안등을 만들어 유사시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 장안문(長安門)
    • 23. 장안문(長安門)

      장안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북쪽 문으로 수원화성의 정문입니다.
      1794년(정조 18)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5일 마쳤습니다.
      장안이라는 말은 수도를 상징하는 말이자 백성들의 안녕을 의미합니다.
      장안문은 우진각 지붕(지붕면이 사방으로 경사지게 되어있는 형태)으로 규모가 웅장합니다.
      성문의 바깥에는 반달모양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 북서적대(北西敵臺)
    • 24. 북서적대(北西敵臺)

      북서적대는 장안문의 북서쪽 약 62.5m 지점에 있으며 1795년(정조 19년) 화성 축성과 함께 축조되었습니다.
      적대란 성곽의 중간에 약 82.6m의 간격을 두고 성곽보다 다소 높은 대를 마련하여 화창이나 활과 화살 등을 비치해 두는 한편 적군의 동태와 접근을 감시하는 곳으로 옛날 축성법에 따른 성곽 시설물입니다.
      화성 축성 때에는 이미 총포가 전쟁에 사용되던 때이지만, 옛날의 축성법에 따라 적대를 만들어 창과 활 대신 총포를 쏠 수 있도록 총안을 마련하였습니다.

    • 북서포루(北西砲樓)
    • 25. 북서포루(北西砲樓)

      북서쪽에 위치한 북서포루는 검정 벽돌을 쌓에 치성과 같이 성밖으로 돌출시키고 내부는 나무판을 이용하여 3층으로 구획하였으며 포혈을 만들어 화포를 감추어 두고 위와 아래에서 한꺼번에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북서포루는 성밖으로 약 8.8m 돌출되어있으며 지붕의 형태가 성안쪽은 맞배지붕형식, 바깥쪽은 우진각 형식으로 된 것이 특징입니다.

    • 북포루(北舖樓)
    • 26. 북포루(北舖樓)

      북포루는 북서포루의 서쪽 129보 5척의 거리에 있습니다.
      치(雉)가 성 밖 19척까지 튀어 나왔습니다.
      외면의 너비 27척, 5량 집을 지었다. 사방 2간인데, 구조는 동북포루와 같습니다.
      3면의 평평한 여장은 누의 바닥과 이어지며, 각각 포를 쏘는 구멍을 내었고 안쪽에 나무사다리를 설치했습니다.

    •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 27.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공심돈은 적의 동향을 살핌과 동시에 공격도 가능한 시설로 수원 화성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1796년(정조 20) 3월 10일 완공된 서북공심돈은 3층 건물로 아래쪽 부분의 치성(雉城)은 석재로, 위쪽 부분의 벽체는 전돌로 쌓았습니다.
      내부는 전투에 편리한 구조를 갖추었으며 계단을 통해 오르내렸습니다.
      1797년(정조 21) 1월 화성을 방문한 정조는 서북공심돈을 보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것이니 마음껏 구경하라”며 매우 만족스러워했다고 합니다.

    • 화서문(華西門)
    • 28. 화서문(華西門)

      화서문은 화성의 4대문 중 서쪽 대문입니다.
      1795년(정조 19) 7월 21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6년(정조 20) 1월 8일 마쳤습니다.
      화성 서쪽의 남양만과 서해안 방면으로 연결되는 통로 역할을 하였습니다.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제40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편액은 초대 화성유수였던 채제공(蔡濟恭)이 썼으며 옹성 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는 성문공사를 담당하였던 사람과 책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 서북각루(西北角樓)
    • 29. 서북각루(西北角樓)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설입니다.
      비상시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도 하였습니다.
      서북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 중 하나로 숙지산이 마주보이는 자리에서 화서문 일대의 군사를 지휘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 서일치(西一雉)
    • 30. 서일치(西一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입니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습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서일치는 서북각루와 서포루(西砲樓) 사이에 있습니다.

    • 서포루(西砲樓)
    • 31. 서포루(西砲樓)

      서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砲樓) 중 서북각루와 서장대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정조 20) 5월 30일 완공되었습니다.
      포루는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3층의 내부를 비워두고 그 안에서 화포공격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입니다.

    • 서이치(西二雉)
    • 32. 서이치(西二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입니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습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서이치는 서포루(西砲樓)와 서장대 사이에 있습니다.

    • 서노대(西弩臺)
    • 33. 서노대(西弩臺)

      노대는 성 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게 지은 시설입니다.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가 두 곳이 있습니다.
      서노대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하여 사방을 볼 수 있으며 정팔각형 평면이며 기와 벽돌로 쌓았습니다.

    • 서장대(西將臺)
    • 34. 서장대(西將臺)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입니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습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으며 ‘화성장대(華城將臺)’란 편액은 정조가 친히 쓴 것입니다.
      1794년(정조 18) 8월 11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29일 완성되었습니다.

    • 서암문(西暗門)
    • 35. 서암문(西暗門)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입니다.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문입니다.
      화성에는 5개의 암문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서암문은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기 전에는 암문이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감춰져 있습니다.
      1796년(정조 20) 6월 18일 완공되었습니다.

    • 서포루(西舖樓)
    • 36. 서포루(西舖樓)

      포루는 성곽을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 건물이며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 곳으로 화성에는 5개의 포루(舖樓)가 있습니다.
      서암문이 적에게 발각되어 공격받는 것에 대비하여 설치되었습니다.

    • 서삼치(西三雉)
    • 37. 서삼치(西三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입니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습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서삼치는 서포루(西舖樓)와 서남암문 사이에 있습니다.

    • 서남암문(西南暗門)
    • 38. 서남암문(西南暗門)

      서남암문은 서암문의 남쪽 367보 되는 곳에 있는데 용도(甬道)가 실지로 시작되는 곳이고 화양루의 통로가 됩니다.
      벽돌로 된 홍예는 안쪽의 너비가 7척 높이가 8척 5촌이고 바깥 너비 6척 높이 8척입니다.
      위에는 안팎으로 평평한 여장을 설치하였으며 그 안에다 집을 지었는데 이것이 포사(鋪舍)입니다.
      서남포사는 암문 위에 있어 높은 곳에 의거해서 멀리까지 볼수 있기 때문에 군졸을 두어서 경보를 알리기에 알맞게 되어 있습니다.

    • 서남각루(西南角樓)
    • 39. 서남각루(西南角樓)

      서남각루는 화양루(華陽樓)라고도 하는데, 용도(甬道)의 남쪽으로 멀리 떨어지고 높은 지점 경치좋은 곳에 따로 우뚝 서 있습니다.
      누의 규모는 6간인데 남북 21척, 동서 14척, 남쪽으로 2간은 판자를 깔고 난간을 둘러치고, 삼면에 판문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북쪽에는 분합을 내고, 분합의 밖으로 4간에는 네모난 벽돌을 깔았습니다.
      이 벽돌로부터 판자를 깐 데까지의 높이 1척 7촌 석체(石)에서 벽돌을 깐 데까지 높이 2척, 단청은 5토를 썼으며, 들보 위는 회를 발랐습니다.

    • 남포루(南砲樓)
    • 40. 남포루(南砲樓)

      포루(砲樓)는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치섬과 유사하게 축조하면서 내부를 공심돈과 같이 비워 그 안에 화포 등을 감추어 두었다가 위. 아래와 삼면에서 한꺼번에 공격할 수 있도록 한 시설입니다.
      성곽시설물 중에서 가장 중무장된 시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화성에는 벽돌을 사용하여 모두 5개의 포루(남포루, 서포루, 북서포루, 북동포루, 동포루)를 만들었는데, 서포루만 약간 작고 4개의 포루는 동일한 규격입니다.

    • 남치(南雉)
    • 41. 남치(南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입니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습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남치는 팔달문과 남포루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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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달문(八達門)
  • 팔달문(八達門)

    팔달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남쪽 문으로 남쪽에서 수원으로 진입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정조대왕과 당대 국왕들이 현륭원을 가기 위해 이곳을 통과했다고 합니다.
    1794년(정조 18)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15일에 완공하였습니다.
    팔달문은 모든 곳으로 통한다는 '사통팔달'에서 비롯한 이름이며 축성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제40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 남수문(南水門)
  • 남수문(南水門)

    남수문은 수원천이 화홍문에서 남쪽으로 흘러 내려와 성곽과 다시 만나는 지점에 만든 수문입니다.
    수원천 하류 수량증가에 대비하여 9개의 홍예수문으로 되어 있으며 수문 위에는 성밖 적들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포사가 세워져 있어 비상시에는 군사들이 대기 하거나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남수문 복원을 위해 지난 2004년 남수문터에 대한 발굴조사에 나섰고, 2012년 6월 복원을 완료하였습니다.

  • 동남각루(東南角樓)
  • 동남각루(東南角樓)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건물입니다.
    비상시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도 하였습니다.
    동남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 중 성 안팎의 시야가 가장 넓은 곳입니다.
    남수문 방면의 방어를 위하여 남공심돈과 마주보며 군사를 지휘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 동삼치(東三雉)
  • 동삼치(東三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입니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습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동삼치는 동이포루와 동남각루의 중간지점에 있습니다.

  • 동이포루(東二舖樓)
  • 동이포루(東二舖樓)

    포루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음 목조건물이며 초소나 군사대기소와 같은 곳입니다.
    동이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 (정조 20)7월 3일에 완공되었습니다.
    평탄하고 넓은 지형에 위치하고 있으며 봉돈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하였습니다.
    서북쪽의 포루와 다르게 성벽에서 많이 돌출되었으며 판문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 봉돈(烽墩)
  • 봉돈(烽墩)

    1796년 6월 17일 완성된 수원 화성 봉돈(烽墩)은 일반적인 봉수대(烽燧臺)가 주변을 잘 살필 수 있는 산 정상에 별도의 시설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화성 성벽에 맞물려 벽돌로 만든 것이 특징입니다.
    우리나라 성곽 양식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으로 마치 예술작품처럼 정교하게 만든 수원화성의 대표시설입니다.
    평상시 남쪽 첫 번째 화두(火竇: 횃불구멍)에서 횃불이나 연기를 올려 용인 석성산과 흥천대 봉화로 신호를 보냅니다.

  • 동이치(東二雉)
  • 동이치(東二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입니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습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동이치는 동포루(東砲樓)와 봉돈의 중간 지점에 있습니다.

  • 동포루(東砲樓)
  • 동포루(東砲樓)

    동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동쪽 동일치와 동이치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 (정조20) 7월 16일에 완공되었습니다.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로 치성의 발전된 형태입니다.
    화성의 포루는 모두 벽돌을 사용하여 만들었으며 공심돈과 같이 안을 비워 적을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공격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 동일치(東一雉)
  • 동일치(東一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입니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습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동일치는 동일포루에서 봉돈 쪽으로 125보(148m)의 거리에 있습니다.

  • 동일포루(東一舖樓)
  • 동일포루(東一舖樓)

    포루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초소나 군사대기소와 같은 곳입니다.
    동일 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정조20) 7월 10일 완공되었습니다.
    평탄하고 넓은 지형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북쪽의 포루와 다르게 성벽에서 많이 돌출 되었으며 판문이 설치되어있지 않습니다.

  • 창룡문(蒼龍門)
  • 창룡문(蒼龍門)

    창룡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동쪽 문으로 1795년(정조19) 5월 8일 공사를 시작하여 10월 17일 마쳤습니다.
    창룡은 곧 청룡으로 풍수지리상 좌청룡이며 동쪽을 의미합니다.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옹성을 반달모양으로 쌓았는데 장안문, 팔달문과 달리 한쪽을 열어놓았습니다.
    옹성 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는 공사를 담당하였던 사람과 책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 동북노대(東北弩臺)
  • 동북노대(東北弩臺)

    동북노대는 창룡문의 북쪽 96보의 거리에 있습니다.
    치(雉) 위에 벽돌을 쌓아 대(臺)를 만들었는데, 대 아래의 석축 높이 13척, 대의 높이 18척입니다.
    벽돌로 쌓는 방식은 사각형이지만 모서리를 깎아 벌의 허리처럼 만들어서 모를 죽였습니다. 안쪽 너비 17척 4촌, 바깥쪽 너비 19척, 성밖으로 나온 부분이 25척 5촌, 2개의 현안을 뚫었고, 위에 둥근 여장을 만들었습니다.

  •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
  •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

    동북공심돈은 노대의 서쪽 60보쯤 되는 거리에 있습니다.
    성탁(城托)의 위 성가퀴 안에, 요동(遼東)에 있는 계평돈(平墩)을 본떠서, 벽돌로 쌓아서 둥그렇게 돈(墩)을 만들었는데, 겹으로 둘렀습니다.
    높이 17척 5촌, 바깥 원 둘레 122 척, 벽돌로 된 부분의 두께 4척, 안쪽 원 둘레 71척, 내원과 외원 사이에 가운데 4척 5촌의 공간을 비워두고, 2 층 덮개판으로 둘렀습니다. 아래 층 높이 7척 3촌, 가운데 층 높이 6척 5촌인데, 모두 군사들의 몸을 숨길 수 있게 하였습니다.

  • 동장대(東將臺) - 연무대
  • 동장대(東將臺) - 연무대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머물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입니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습니다.
    동장대는 1795년(정조 19) 7월 15일 공사를 시작하여 8월 25일 완공되었습니다.
    무예를 수련하는 공간이었기에 연무대(鍊武臺)라고 하였습니다.
    이곳의 지형은 높지 않지만 사방이 트여 있고 등성이가 솟아 있어서 화성의 동쪽에서 성 안을 살펴보기에 가장 좋은 곳입니다.

  • 동암문(東暗門)
  • 동암문(東暗門)

    동암문은 동장대 서쪽 166보 되는 곳에 있습니다.
    동쪽에 자리잡고 북쪽을 향하여 있으며 벽돌로 안과 밖의 홍예를 만들어 말 한필이 지나갈 수 있습니다.
    안쪽 너비는 7척 높이는 8척이고 바깥은 너비가 6척, 높이가 7척 5촌입니다. 문 위는 벽돌을 깔았고 누는 세우지 않았습니다.
    다만 오성지와 한 개의 큰 둥근 여장을 설치하였는데 마치 나무로 만든 전붕(戰棚)의 제도와 같습니다.

  • 동북포루(東北舖樓)
  • 동북포루(東北舖樓)

    동북포루(東北鋪樓)는 각건대(角巾臺)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방화수류정 동쪽 135보 4척쯤 되는 거리에 있습니다.
    지세가 별안간 높아져서 용두(龍頭)를 눌러 굽어보고 있습니다.
    『성서(城書)』에 이르기를, "치성의 위에 지은 집을 포(鋪)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치성에 있는 군사들을 가려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치성이 성 밖으로 18척 5촌이 튀어 나왔는데, 외면의 너비는 24척이고, 현안(懸眼) 1구멍을 뚫었다. 5량으로 집을 지었는데, 판자를 깔아 누를 만들었습니다.

  • 북암문(北暗門)
  • 북암문(北暗門)

    북암문은 동북각루의 동쪽 40보 되는 벽돌로 쌓은 성 사이에 있습니다.
    안과 밖의 홍예 역시 벽돌로 쌓았습니다.
    안쪽은 너비가 4척 6촌 높이가 6척 5촌이고, 바깥 쪽은 너비가 4척 높이가 6척입니다.
    문위에는 둥근 여장을 설치했는데 제도는 동암문과 같습니다.
    홍예 사이에는 돌계단을 설치하여 들어가는 곳은 높고 나오는 곳은 낮게 만들었는데, 지세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 동북각루(東北角樓)
  • 동북각루(東北角樓)

    방화수류정은 1794년(정조 18) 10월 19일 완공되었습니다.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訪花隨柳)”라는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은 독특한 평면과 지붕형태때문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화성에서 가장 뛰어나며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 북수문(北水門) - 화홍문
  • 북수문(北水門) - 화홍문

    화성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수원천 위에는 북수문과 남수문 두 개의 수문이 있습니다.
    북수문은 1794년(정조 18)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5년(정조 19) 1월 13일에 완성되었습니다.
    별칭은 화홍문으로 화(華)자는 화성을 의미하고, 홍(虹)자는 무지개를 뜻합니다.
    장쾌한 물보라가 수문으로 넘쳐나는 모습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 북동포루(北東砲樓)
  • 북동포루(北東砲樓)

    북동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砲樓) 중 장안문과 화홍문 사이인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4년(정조 18) 9월 23일에 완공되었습니다.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火砲)를 쏠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의 발전된 형태입니다.

  • 북동치(北東雉)
  • 북동치(北東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입니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습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북동치는 북동적대 바로 옆으로 적대와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 북동적대(北東敵臺)
  • 북동적대(北東敵臺)

    적대는 성문과 옹성에 접근하는 적을 막기 위해 성문의 좌우에 설치한 방어 시설물입니다.
    포루와 치성은 성곽밖으로 완전히 돌출된 반면 이 적대는 시설물의 반만 외부로 돌출되고 반은 성안으로 돌출되어 있습니다.
    적대는 성곽보다 높게 만들어서 적군의 동태와 접근을 감시하였으며 총안등을 만들어 유사시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 장안문(長安門)
  • 장안문(長安門)

    장안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북쪽 문으로 수원화성의 정문입니다.
    1794년(정조 18)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5일 마쳤습니다.
    장안이라는 말은 수도를 상징하는 말이자 백성들의 안녕을 의미합니다.
    장안문은 우진각 지붕(지붕면이 사방으로 경사지게 되어있는 형태)으로 규모가 웅장합니다.
    성문의 바깥에는 반달모양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 북서적대(北西敵臺)
  • 북서적대(北西敵臺)

    북서적대는 장안문의 북서쪽 약 62.5m 지점에 있으며 1795년(정조 19년) 화성 축성과 함께 축조되었습니다.
    적대란 성곽의 중간에 약 82.6m의 간격을 두고 성곽보다 다소 높은 대를 마련하여 화창이나 활과 화살 등을 비치해 두는 한편 적군의 동태와 접근을 감시하는 곳으로 옛날 축성법에 따른 성곽 시설물입니다.
    화성 축성 때에는 이미 총포가 전쟁에 사용되던 때이지만, 옛날의 축성법에 따라 적대를 만들어 창과 활 대신 총포를 쏠 수 있도록 총안을 마련하였습니다.

  • 북서포루(北西砲樓)
  • 북서포루(北西砲樓)

    북서쪽에 위치한 북서포루는 검정 벽돌을 쌓에 치성과 같이 성밖으로 돌출시키고 내부는 나무판을 이용하여 3층으로 구획하였으며 포혈을 만들어 화포를 감추어 두고 위와 아래에서 한꺼번에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북서포루는 성밖으로 약 8.8m 돌출되어있으며 지붕의 형태가 성안쪽은 맞배지붕형식, 바깥쪽은 우진각 형식으로 된 것이 특징입니다.

  • 북포루(北舖樓)
  • 북포루(北舖樓)

    북포루는 북서포루의 서쪽 129보 5척의 거리에 있습니다.
    치(雉)가 성 밖 19척까지 튀어 나왔습니다.
    외면의 너비 27척, 5량 집을 지었다. 사방 2간인데, 구조는 동북포루와 같습니다.
    3면의 평평한 여장은 누의 바닥과 이어지며, 각각 포를 쏘는 구멍을 내었고 안쪽에 나무사다리를 설치했습니다.

  •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공심돈은 적의 동향을 살핌과 동시에 공격도 가능한 시설로 수원 화성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1796년(정조 20) 3월 10일 완공된 서북공심돈은 3층 건물로 아래쪽 부분의 치성(雉城)은 석재로, 위쪽 부분의 벽체는 전돌로 쌓았습니다.
    내부는 전투에 편리한 구조를 갖추었으며 계단을 통해 오르내렸습니다.
    1797년(정조 21) 1월 화성을 방문한 정조는 서북공심돈을 보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것이니 마음껏 구경하라”며 매우 만족스러워했다고 합니다.

  • 화서문(華西門)
  • 화서문(華西門)

    화서문은 화성의 4대문 중 서쪽 대문입니다.
    1795년(정조 19) 7월 21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6년(정조 20) 1월 8일 마쳤습니다.
    화성 서쪽의 남양만과 서해안 방면으로 연결되는 통로 역할을 하였습니다.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제40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편액은 초대 화성유수였던 채제공(蔡濟恭)이 썼으며 옹성 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는 성문공사를 담당하였던 사람과 책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 서북각루(西北角樓)
  • 서북각루(西北角樓)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설입니다.
    비상시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도 하였습니다.
    서북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 중 하나로 숙지산이 마주보이는 자리에서 화서문 일대의 군사를 지휘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 서일치(西一雉)
  • 서일치(西一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입니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습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서일치는 서북각루와 서포루(西砲樓) 사이에 있습니다.

  • 서포루(西砲樓)
  • 서포루(西砲樓)

    서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砲樓) 중 서북각루와 서장대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정조 20) 5월 30일 완공되었습니다.
    포루는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3층의 내부를 비워두고 그 안에서 화포공격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입니다.

  • 서이치(西二雉)
  • 서이치(西二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입니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습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서이치는 서포루(西砲樓)와 서장대 사이에 있습니다.

  • 서노대(西弩臺)
  • 서노대(西弩臺)

    노대는 성 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게 지은 시설입니다.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가 두 곳이 있습니다.
    서노대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하여 사방을 볼 수 있으며 정팔각형 평면이며 기와 벽돌로 쌓았습니다.

  • 서장대(西將臺)
  • 서장대(西將臺)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입니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습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으며 ‘화성장대(華城將臺)’란 편액은 정조가 친히 쓴 것입니다.
    1794년(정조 18) 8월 11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29일 완성되었습니다.

  • 서암문(西暗門)
  • 서암문(西暗門)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입니다.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문입니다.
    화성에는 5개의 암문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서암문은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기 전에는 암문이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감춰져 있습니다.
    1796년(정조 20) 6월 18일 완공되었습니다.

  • 서포루(西舖樓)
  • 서포루(西舖樓)

    포루는 성곽을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 건물이며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 곳으로 화성에는 5개의 포루(舖樓)가 있습니다.
    서암문이 적에게 발각되어 공격받는 것에 대비하여 설치되었습니다.

  • 서삼치(西三雉)
  • 서삼치(西三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입니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습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서삼치는 서포루(西舖樓)와 서남암문 사이에 있습니다.

  • 서남암문(西南暗門)
  • 서남암문(西南暗門)

    서남암문은 서암문의 남쪽 367보 되는 곳에 있는데 용도(甬道)가 실지로 시작되는 곳이고 화양루의 통로가 됩니다.
    벽돌로 된 홍예는 안쪽의 너비가 7척 높이가 8척 5촌이고 바깥 너비 6척 높이 8척입니다.
    위에는 안팎으로 평평한 여장을 설치하였으며 그 안에다 집을 지었는데 이것이 포사(鋪舍)입니다.
    서남포사는 암문 위에 있어 높은 곳에 의거해서 멀리까지 볼수 있기 때문에 군졸을 두어서 경보를 알리기에 알맞게 되어 있습니다.

  • 서남각루(西南角樓)
  • 서남각루(西南角樓)

    서남각루는 화양루(華陽樓)라고도 하는데, 용도(甬道)의 남쪽으로 멀리 떨어지고 높은 지점 경치좋은 곳에 따로 우뚝 서 있습니다.
    누의 규모는 6간인데 남북 21척, 동서 14척, 남쪽으로 2간은 판자를 깔고 난간을 둘러치고, 삼면에 판문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북쪽에는 분합을 내고, 분합의 밖으로 4간에는 네모난 벽돌을 깔았습니다.
    이 벽돌로부터 판자를 깐 데까지의 높이 1척 7촌 석체(石)에서 벽돌을 깐 데까지 높이 2척, 단청은 5토를 썼으며, 들보 위는 회를 발랐습니다.

  • 남포루(南砲樓)
  • 남포루(南砲樓)

    포루(砲樓)는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치섬과 유사하게 축조하면서 내부를 공심돈과 같이 비워 그 안에 화포 등을 감추어 두었다가 위. 아래와 삼면에서 한꺼번에 공격할 수 있도록 한 시설입니다.
    성곽시설물 중에서 가장 중무장된 시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화성에는 벽돌을 사용하여 모두 5개의 포루(남포루, 서포루, 북서포루, 북동포루, 동포루)를 만들었는데, 서포루만 약간 작고 4개의 포루는 동일한 규격입니다.

  • 남치(南雉)
  • 남치(南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입니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습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남치는 팔달문과 남포루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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