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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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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본정보
  • 수원하면 단연 '갈비'가 으뜸!
    전국을 넘어 세계에 그 맛을 알리고 있는 수원갈비는 다른 지방의 갈비보다 크고 푸짐하여 육질이 부드럽고 육즙이 풍부해 맛이 매우 좋습니다.
    은은한 숯불에 구워 먹으면 입 안 가득 고기 고유의 향과 고소한 식감이 전해져 수원양념갈비의 참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 수원 우시장의 명성
  • 수원의 우시장은 조선 후기 이래 전국에서 이름난 곳이었습니다.
    장날이면 각지에서 소장수와 농민들이 모여들어 언제나 성시를 이루었고, 1년 동안 소의 거래량이 2만 두 이상이었습니다.
    수원은 지방으로부터 한양으로 들어가는 물산이 모이던 곳입니다.
    특히 수원의 우시장은 일제 때부터 3대 우시장으로 꼽혀 장날이면 각지에서 모여든 소장수와 농민들로 성시를 이루었습니다.
    수원의 우시장이 이렇게 유명했던 까닭은 정조의 새 도시 육성책과 관계가 깊습니다.
    정조는 화성(華城)을 축성하고 수원을 자립 기반을 갖춘 도시로 육성하기 위하여 둔전(屯田)을 경영하였습니다.
    그리고 둔전에서 농사를 잘 짓도록 농민들에게 종자와 소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수확기가 되면 수확의 절반을 거둬들이고, 소는 잘 키워 3년에 한 마리씩 갚도록 했습니다.
    이에 점차 늘어난 소를 팔기 위한 장소가 필요하였고 자연스럽게 우시장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 수원의 우시장은 일반 시장과 함께 섰습니다.
    수원장은 성안장과 성밖장이 섰는데, 성안 시장은 10일 간격으로 9·19·29일 열렸고, 성밖 시장은 4·14·24일에 열려 전체적으로 보면 5일장이 서는 셈이었습니다.
    수원장의 성황은 경기 남부 일대 패션을 이끌었던 포목상과 우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더욱 커졌습니다.
    소의 거래는 다른 어떤 물품의 거래보다 많은 돈이 오고 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시장의 성황은 수원 지방에서 상품 교역이 늘어나는 한 요인이 되었고, 수원은 농업 도시뿐만 아니라 상업 도시로서도 크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 수원의 우시장은 19세기 중반 이후 충청도 지역의 소가 값이 좋은 서울 쪽으로 올라오는 경향에 힘입어 성장하였습니다.
    소들은 남쪽 먼 곳으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따라 서울로 북상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경기남부의 경우 오산에서 소를 팔고 남으면 수원으로 가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오산장이 수원장에 비해서 소 값이 싸서 오산장에서 소를 사다가 수원장에 파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수원 갈비의 탄생
  • 이러한 소의 집산과 거래는 동시에 수원을 갈비의 고장으로 이름나게 하였습니다.
    수원갈비는 전국적으로 알려졌던 수원 우시장과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재료로 쓸 한우 갈비를 구하기가 쉽다는 것이 수원갈비를 있게 한 최대 요인이 될 것입니다.
    ‘수원갈비’는 1940년대 팔달문 밖 장터인 지금의 영동시장 싸전거리에서 화춘제과를 경영하던 이귀성씨가 8·15 광복이 되면서 영동에 ‘화춘옥’이란 간판을 걸고 음식점을 시작한 것이 시초가 되었습니다.
    당시 이씨는 그 곳이 시장 안이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다는 데 착안, 음식장사의 경험도 없이 우선 해장국 장사를 시작하였습니다.
    화춘옥 해장국은 소갈비를 푸짐하게 넣어 주는 것으로 인기를 끌었고 도처에서 손님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비싼 갈비를 넣어주다 보니 해장국의 질은 좋았지만 장기적으로 이익에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갈비에다 양념을 넣고 무쳐서 재어 놓으면 맛있는 갈비의 맛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양념갈비를 구워 팔기 시작했습니다.
    숯불에 구운 갈비는 맛이 일품이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 신문에 소개되고 박정희 대통령도 화춘옥에 와서 갈비를 먹고 갈 정도로 이름을 얻었습니다.
    1979년쯤 화춘옥 간판이 내려지고 그 자리에 백화점을 세움으로써 화춘옥의 역사는 막을 내렸지만 ‘수원갈비’의 원조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수원갈비는 어느 특정한 집의 것이 아니고 수원의 어떤 갈비집을 가나 독특한 ‘수원갈비’를 맛볼 수 있습니다.
    또한 수원은 갈비의 고장으로 전국에 널리 이름이 알려져 1985년 4월 12일 수원갈비를 수원시 고유 향토음식으로 지정하고 맛과 질을 향상시켜 ‘수원갈비’ 전승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 수원시 SNS 서포터즈
  • 최용석 서포터즈 사진
  • 수원갈비에 대한 사진은
    2017 수원시 SNS 서포터즈 최용석님께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 위치 (소재지)
  • 지도 들어가는 곳
  • 수원관광정보갱신일 : 2018년 06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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