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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관광

수원의 문화재

정약용 행초 다산사경첩

  • 문화재 안내
문화재 안내(지정번호, 소재지, 지정일자)
지정번호 보물
시대 조선시대
소재지 국립농업박물관
지정일자 2010.10.25
  • 기본정보
  •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전남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1809년(순조9)에 쓴 <다산사경>과 1818년(순조18)에 쓴 <순암호설>, 유배가 끝난 후인 1823년(순조23)에 쓴 <여다산제생문답>과 강진 유배 초기로 추정되는 오언시 등을 수록한 서첩이다. 서체는 대부분 행서이고, 일부는 초서로 되어 있다.
    <다산사경(茶山四景)>은 1801년 강진으로 유배 간 정약용이 1808년부터 사용하던 거처인 다산초당 주변에 있던 4가지 사물인 다조(茶竈, 차를 끓이는 부엌으로 초당 앞마당에 놓인 평평한 바위), 약천(藥泉, 초당 위의 옹달샘), 정석(丁石, 정약용이 쓴 '정석' 글씨를 새긴 바위), 석가산(石假山, 초당 연못 중앙에 돌을 쌓아 만든 조성물)에 대하여 읊은 칠언율시이다.
    <순암호설(淳菴號說)>은 다산초당의 옛 주인이었던 윤규로의 넷째 아들 윤신동에게 '순암'이라는 호를 지어준 이유를 설명한 글이며, <여다산제생문답(與茶山諸生問答)>은 유배를 마치고 머물던 경기도 남양주의 거처로 찾아온 유배시절의 제자들과 주고 받았던 문답이다.
    서첩크기는 가로 14.1cm, 세로 23.2cm이며, 표지의 제첨(별도의 종이에 써서 표지에 붙임 제목)은 예서(隸書)로 썼다.
    정약용의 강진 유배 시절을 대표하는 서첩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으며 2010년 10월 25일 보물로 지정받았다.
    (현재 유물은 향후 개관예정인 권선구 서둔동의 국립농업박물관에 보관중이다.)

    정약용 행초 다산사경첩 일부
    <정약용 행초 다산사경첩> 중 일부 (사진출처: 문화재청)
  • 위치 (소재지)
  • 지도 들어가는 곳
  • 수원관광정보갱신일 : 2021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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