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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관광

수원의 문화재

  • 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
  • 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

    이 비는 창성사에서 입적한 진각국사 천희(千熙, 1307~1382)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것으로 고려 우왕 12년(1386)에 만들어졌다. 천희는 13살의 나이에 불교계에 들어섰다. 57세라는 늦은 나이에 중국 유학을 결심하여 1364년부터 2년간 원나라에서 선종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귀국 후 국사(國師)에 봉해져 영주 부석사(浮石寺)를 중수하는 등 고려 말에 활약하였다. 본래 탑비는 광교산 기슭의 창성사 폐사지에 있었으나, 1965년 6월 9일 수원화성의 방화수류정 옆으로 이전하고 보호각을 설치하였다. 비(높이 215cm)의 형...

  • 수원 팔달문
  • 수원 팔달문

    팔달문(八達門)은 화성의 4대문 중 남문으로, 정조대왕과 당대 국왕들의 현륭원 참배 시 이용되었던 문이다. 1794년(정조 18)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15일에 완공하였다. 팔달문은 모든 곳으로 통한다는 '사통팔달(四通八達)'에서 비롯한 이름으로, 축성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제402호로 지정되었다. 성문의 바깥에는 반달모양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는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성문의 오른쪽 석벽에는 팔달문 ...

  • 수원 화서문
  • 수원 화서문

    화서문(華西門)은 화성의 4대문 중 서쪽 대문으로, 화성 서쪽의 남양만을 비롯하여 서해안 방면으로 연결되는 통로 역할을 하였다. 1795년(정조 19) 7월 21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6년(정조 20) 1월 8일 마쳤다.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제403호로 지정되었다. 편액은 초대 화성유수였던 채제공(蔡濟恭)이 썼으며, 옹성 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는 성문공사를 담당하였던 사람과 책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 채제공 초상 일괄 - 시복본
  • 채제공 초상 일괄 - 시복본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은 충남 홍주(현재의 청양)에서 태어나 1735년(영조 11) 15세에 향시에 급제,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친 후 세손 교육을 담당하고 영조의 장례를 진행하는 등 영조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은 인물이다. 이후 정조의 측근이자 신임도가 매우 높은 신하로서 초대 화성유수(華城留守)를 역임하고 영의정까지 올랐으며, 수원 화성 축성 시 총책임자였다. 채제공 초상화 시복본(時服: 문무백관이 공적인 업무를 볼 때 입는 옷)은 비단에 채색을 입힌 것으로, 1791년 채제공이 73세 때 화사 이명기가 41세의 정조...

  • 박유명 초상
  • 박유명 초상

    박유명(朴惟明, 1582∼1640)은 본관이 상주로 1620년(광해군 12) 무과에 급제하여 서산군수로 관직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1623년에 인조반정에 참여하였으며, 그 뒤 당상선전관(堂上宣傳官: 왕의 호위, 전령, 부신(符信)의 출납과 사졸 호령을 담당한 무관직)을 거쳐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였고, 사후 공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박유명 초상화는 인조반정에 참여한 공으로 정사공신 3등에 책록되었을 때 그려진 공신상(功臣像)이다. 가슴에는 무관임을 표현한 호랑이 흉배가 그려져 있다.

  • 영조어필 『읍궁진장첩』
  • 영조어필 『읍궁진장첩』

    이 서첩은 영조(1694~1776)의 여러 어제어필(御製御筆)을 모아 1첩 18장으로 꾸민 것이다. 규격은 세로 36.4㎝이고 가로 23.7㎝이며 종이에 먹으로 글씨를 썼다. 서첩의 표지에는 “영조어필 읍궁진장(英廟御筆 泣弓珍藏)”이라 쓰여 있다. 이 어필첩은 영조어필을 모은 몇몇 서첩 가운데 수록 필적이 가장 정선(精選)된 것으로, 영조 노년인 1761년, 1765년, 1770년의 연대가 있어 주목된다. 또한 조선후기 궁중 장황으로 꾸며지고 있으며, 보존상태도 양호하여 어필자료로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

  • 박태유 필적 『백석유묵첩』
  • 박태유 필적 『백석유묵첩』

    『백석유묵첩(白石遺墨帖)』은 17세기 후반 문신이며 명필이었던 백석(白石) 박태유(朴泰維, 1648~1746)의 필적이다. 박태유는 효성이 지극하고 조선 숙종대의 명필로 이름을 떨쳤던 것으로 유명하다. 『백석유묵첩』에는 다양한 크기의 여러 서체가 쓰여 있는데 해서(楷書)ㆍ행초(行草)ㆍ광초(狂草)ㆍ예서(隸書)ㆍ행서(行書)로 이루어져 있다. 글씨학습을 위하여 쓰여진 것으로 조선시대 서예 학습 교과서의 일반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 수원 방화수류정
  • 수원 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은 1794년(정조 18) 10월 19일 완공되었다. 동북각루이기도 한 이 곳은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訪花隨柳)”라는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은 독특한 평면과 지붕형태 때문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수원 화성에는 동북각루 외에 서북각루, 동남각루, 서남각루 등 4곳에 각루가 배치되어 있다. 수원 화성의 건축물 중 조형미가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 수원 서북공심돈
  • 수원 서북공심돈

    공심돈(空心墩)은 적의 동향을 살핌과 동시에 공격도 가능한 곳으로 수원 화성에서만 볼 수 있는 시설이다. 수원 화성에는 서북공심돈, 동북공심돈, 남공심돈 등 총 3개가 있었으나, 남공심돈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1796년(정조 20) 3월 10일 3층 건물로 완공된 서북공심돈은 아래쪽 부분의 치성(雉城)은 석재로, 위쪽 부분의 벽체는 전돌로 쌓았다. 내부는 전투에 편리한 구조를 갖추었으며 계단을 통해 오르내렸다. 1797년(정조 21) 1월 화성을 방문한 정조는 서북공심돈을 보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것이니 마음껏...

  • 조선경국전
  • 조선경국전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은 1394년(태조 3) 3월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 조선왕조의 건국이념과 통치철학을 정리하여 왕에게 지어 바친 사찬(私撰)법전으로 1395년 처음 간행하였다. 주나라 제도인 『주례(周禮)』의 6전(六典) 체제를 모범으로 삼아 조선의 현실에 맞게 조정한 후 종합적으로 서술하였다. 그 내용은 『삼봉집(三峰集)』에도 수록되어 있지만 편집 체계는 약간 다르다. 6전 앞에는 치국(治國)의 요지로서 정보위(正寶位), 국호(國號), 정국본(定國本), 세계(世系), 교서(敎書)를 서론으로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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