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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관광

수원의 문화재

  • 채제공 관련 고문서 일괄
  • 채제공 관련 고문서 일괄

    정조시대의 대표적인 재상으로서 초대 화성유수를 지낸 번암 채제공(1720~1799) 관련 고문서다. 총 48종 60점으로, 정조가 직접 작성하여 내려준 문서와 어찰, 채제공이 화성유수와 장용외사를 지내며 받은 공문서, 주변 인물과 주고받은 편지들이다. 정조의 친필 편지, 수원화성 축성을 감독하는 신하들에게 내린 윤음, 수원부의 무사들에게 활쏘기 시험을 시행한 후 시상자와 포상 내역을 기록한 무사시취방 등의 고문서 자료를 통해 정조의 국정 운영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아울러 정조가 신임한 초대 화성유수 채제공의 실제 활동을 확인할 ...

  • 상덕총록
  • 상덕총록

    ‘상덕총록’은 ‘재상 채제공의 덕을 모두 기록한 책’이란 뜻이다. 채제공 말년의 행적을 순 한글로 필사하였다. 채제공의 충성과 영조(英祖)와 정조(正祖) 임금으로부터 받은 신임 등을 기술하여 집안의 딸이나 며느리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앞부분은 1791년 12월부터 1799년 1월 채제공의 죽음까지 채제공 말년의 행적을 서술하였고, 이후 정조가 채제공의 제사에 지어준 뇌문(誄文)을 인용하고, 또 뇌문을 풀이하며 채제공의 행적을 정리하였으며, 마지막에 뇌문을 가...

  • 번암고
  • 번암고

    정조대 초대 화성유수를 지내고 영의정까지 오른 번암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의 문장을 모은 책이다. 채제공은 정조시대의 대표적인 재상으로서 초대 수원유수를 지냈으며 수원화성 축성 당시 총리대신을 맡아 축성을 총괄한 인물이다. 총3책 중 2책은 채제공의 문장 가운데 기문(記文)과 서문(序文)을 편집한 것이고, 1책은 묘지명(墓誌銘)과 묘표(墓表), 행장(行狀)을 모아 필사한 것이다. 필사된 기문은 총 50편이고 서문은 총 48편이며 목판으로 간행한 『번암집』과 편차는 다르지만 그 내용은 모두 수록되어 있다. 각 책의 첫 장...

  • 김수증 서첩-곡운희묵
  • 김수증 서첩-곡운희묵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이자 서예가인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 1624~1701)의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가 두루 실린 서첩이다. 김수증의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연지(延之)이다. 곡운은 조선중기 서예사에서 예서로 가장 뛰어났던 중요한 명필로 수많은 비문(碑文)을 썼다. 이 첩에는 큰 예서, 작은 예서, 행초서로 쓴 『주역』과 아홉 경전[九經]을 비롯한 주돈이(周敦頤) 등 송나라의 유학자 8명의 어구(語句)와 소옹(邵雍) 그리고 주희(朱熹)가 읊은 오언절구 10수 등이 실려 있다. 대부분 선비의 수신(修身)을 지향하는...

  • 송준길 서첩-민기묘표, 신도비명
  • 송준길 서첩-민기묘표, 신도비명

    조선 현종 때의 정치가이자 대학자인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이 쓴 《민기묘표(閔機墓表)》 앞면과 《민기신도비(閔機神道碑)》의 원고다. 원고란 비석에 글자를 새기기 전에 먹으로 필사한 것으로, 비석 글씨의 원본이라 볼 수 있다. 이 원고는 글자나 글줄을 잘라 편집한 뒤 첩으로 꾸민 것이다. 《민기신도비》 원고에는 붉은색 방안선이 남겨져 있는데 비석에 새겨질 글자 배열과 간격을 맞추기 위한 것이다. 동춘당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과 함께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 이래 ...

  • 성수침 서첩-청송진묵
  • 성수침 서첩-청송진묵

    · 지정일자 : 2018.04.30 조선 명종 때를 대표하는 학자이자 명필인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 1493~1564)의 필적을 모은 서첩이다. 내용은 당나라 장손좌보(長孫佐輔), 고황(顧況), 진우(陳羽), 이백(李白)의 칠언시를 행초서로 쓴 것이다. 담묵을 사용한 속도감 있는 성수침 특유의 운필이 잘 드러난다. 시가 끝나는 말미에는 형태와 새김이 다른 인장 [청송(聽松)]이 뚜렷이 찍혀 있는데 그중 정형(鼎形)의 양각 인장은 새김이 좋아 조선시대 인장 자료로서도 그 가치가 매우 높다. 또한 서첩의 겉면에 &ls...

  • 정조어필-유시
  • 정조어필-유시

    정조가 과거 시험의 폐단을 지적하고, 순정(純正)한 문체(文體)를 사용하기를 강조하며 직접 써서 내린 유시(諭示)다. 정조는 문체를 치세(治世)의 수단으로 삼고, 평소에도 신하들에게 학문의 근본에 힘쓸 것을 강조하였다. 특히 과거 시험이 제술 위주로 치러지는 문제점을 언급하며 신하들과 이에 대한 방안을 자주 논의하였다. 이 유시에서는 과거 시험장에서 시험을 주관하는 자가 일찍 제출된 시권(試券)을 중요하게 여기고 또 문장의 앞부분만 보고 입격(入格)의 당락을 결정하므로, 응시자들이 문장의 격식을 갖추려하거나 올바른 문체를 사용하는...

  • 정조예필-주희시첩
  • 정조예필-주희시첩

    정조가 세손(世孫) 시절에 쓴 글씨를 모아 만든 서첩이다. 서첩에는 1760년(영조 36) 정조 9세 때 쓴 해서와 1772년(영조 48) 21세 때 쓴 해서가 함께 실려 있다. 말미에는 1806년(순조 6) 홍낙술(洪樂述 1745~1810)이 짓고 쓴 발문이 첨부되어 있다. 9세 때의 글씨는 여러 가지 색지에 주희의 「명도선생화상찬」 구절과 『대학』의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8조목 가운데 맨 앞 구절을 큰 해서로 쓴 것이다. 또 21세 때의 글씨는 주희(朱熹)의 칠언절구 여덟 수를 ...

  • 영조 사 조현명 어필첩
  • 영조 사 조현명 어필첩

    영조가 우의정 조현명(趙顯命 1690~1752)에게 직접 써서 내린 어필 5첩이다. 1739년(영조 15) 도목정사(都目政事) 때 문관을 심사한 이조 전형관 조현명에게 영조가 써서 내려준 사언구(四言句)의 칙유(勅諭)인 《대정일면유어서(大政日面諭御書)》 1첩, 1743년(영조 19)과 1745년(영조 21) 그리고 1746년(영조 22)에 조현명의 사직 상소에 대해 영조의 답변을 각각 써서 내려준 《수서비답(手書批答)》 등 3첩이다. 또한 조현명이 약방(藥房) 도제조(都提調)에 제수된 당일 영조의 진찰을 위해 입시하자 감회가 일어 ...

  • 영조예필-송죽
  • 영조예필-송죽

    조선 제21대 임금 영조(英祖 1694~1776)의 7세때 필적이다. 연잉군(延礽君) 시절(1699.12.24~1721.8.19)의 초기인 1700년(숙종 26)에 쓴 것이다. 큰 폭의 장지(壯紙) 1장 반을 붙인 종이에 큰 글자로 ‘송죽(松竹)’이라 썼는데 어린 나이여서 운필의 한계는 보이지만 필력이 굳세고 당당하다. 궁중의 축장 장황 방식으로 꾸며져 있고, 뒷면 아래에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이 남긴 배관기(拜觀記)와 인장이 찍혀있다. 배관기에는 “영조 7세 때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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