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수원관광

수원의 문화재

  • 노송지대
  • 노송지대

    노송지대는 지지대비가 있는 지지대고개 정상으로부터 옛 경수간 국도를 따라 노송이 생장하는 약 5km의 지대이다. 조선 제22대 임금인 정조가 생부 사도세자의 원침인 현륭원의 식목관에게 내탕금 1,000량을 하사하여 이곳에 소나무 500주와 능수버들 40주를 심게 하였다고 한다. 정조대왕의 효심이 깃들어 있는 구간으로, 현재는 남아있는 일부만의 노송이 보존되어 있다.

  • 김준룡장군 전승지 및 비
  • 김준룡장군 전승지 및 비

    이 비는 병자호란(1636년 12월~1637년 1월) 때 광교산에서 청나라 군사를 물리쳤던 김준룡(金俊龍, 1586~1642)장군의 전승지에 비 모양으로 암반에 글자를 새긴 것이다. 김준룡은 원주 김씨로 1609년(광해군 원년) 무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전라도 병마절도사에 재임하던 중 병자호란(인조 14)이 일어나자 병사를 이끌고 광교산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격전을 벌인 끝에 적장수였던 양고리(楊古利, 청 태종의 매부이자 후금 태조의 사위) 등을 사살하였다. 김준룡 장군은 1792년 정조대왕 때 ‘충양공(忠襄公...

  • 심온선생 묘
  • 심온선생 묘

    심온(沈溫, 1375~1418)은 조선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송, 자는 중옥(仲玉)이다. 조선 제4대 세종대왕의 장인으로 청천부원군에 봉군되었으며, 시호는 안효(安孝)이다. 공은 12세에 국자감 진사시에 급제 후, 1411년(태종 11)에 황해도 관찰사를 지내고 대사헌이 되어서는 관의 기강확립에 힘썼다. 이후 형조·호조·공조·이조판서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1418년(세종 원년)에 영의정이 되어 사신으로 명나라에 갔을 때 발생한 무술옥사(戊戌獄事)에 연루되었다는 모함으로 귀국 도중에 의주에서...

  • 팔달산 지석묘군
  • 팔달산 지석묘군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무덤으로 흔히 고인돌이라 부른다. 이 고인돌은 팔달산의 남쪽 일대를 두루 살필 수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수원시립 중앙도서관의 오른편 기슭을 따라 팔달산으로 조금 오르다 보면 편평한 구릉 위에 1호와 2호 고인돌이 서로 인접하여 있다. 이곳에서 위쪽으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3호와 4호 고인돌이 있다. 3호 고인돌의 하부 구조는 겉으로 드러나 있고, 그 옆에 덮개돌로 추정되는 돌이 흙 속에 묻혀 있다. 팔달산 고인돌의 덮개돌은 규모가 작고 두께는 두툼한 느낌을 준다. 가장 큰 것은 길이 1.8m, ...

  • 아담스기념관
  • 아담스기념관

    아담스기념관은 1923년 6월 25일에 미국 아담스교회의 도움을 받아서 건립된 삼일학원 건물이다. 삼일학원은 1903년 미국인 선교사 W.스웨어러(W.swearer, 1871~1916, 한국명 서원보)가 15명의 소년들을 모아 시작한 교회 부설학교로, 처음에는 자체 건물 없이 중포산 기슭의 교회건물을 빌려 사용했었는데, 수원지방 감리사였던 목사 W.A.노블이 이 사정을 미국 아담스교회에 알려 교인들로부터 건립기금 2만엔을 기부받아 건물을 지었다. 미국 아담스교회 선교부가 설계하고, 중국인 왕영덕이 공사를 맡았다고 한다. 우진각 지...

  • 수원 축만제
  • 수원 축만제

    축만제(祝萬堤)는 1799년(정조 23) 화성의 서쪽 여기산 아래 길이 1,246척, 너비 720척이라는 당시로서는 최대의 크기로 조성된 저수지다. 이에 앞서 정조는 1795년에 장안문 북쪽에 만석거(萬石渠)를, 1797년에 화산 남쪽의 사도세자 묘역 근처에 만년제(萬年堤)를 축조했었다. 대규모 수리시설과 둔전 개간이 크게 성공하자 “농가의 이로움은 수리(水利)만한 것이 없다”고 인식한 정조는 만석거와 만년제의 3배 규모에 달하는 축만제를 조성하였다. 축만제의 규모는 문헌상 제방의 길이가 1,246척(尺), ...

  • 수원 여기산 선사유적지
  • 수원 여기산 선사유적지

    여기산(如岐山) 선사유적은 서호 서쪽의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이 유적에서는 구멍무늬토기가 출토되는 청동기시대 집터와 경질무문토기와 두드림무늬토기가 출토되는 원삼국시대의 집터가 확인되었다. 집터의 시설 중 특징적인 것은 온돌시설의 초기형태라 할 부뚜막이 있는 화덕자리 시설을 비롯하여 서까래와 볏집 지붕이 조사되어 당시의 가옥구조를 추정할 수 있는 중요 자료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생활용구인 토기류와 철기류 등도 출토되었다. 주거지 내부에서 검게 탄 볍씨가 출토되어 서호 일대 주변에서 벼농사가 일반화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선사시대부...

  • 창성사지
  • 창성사지

    창성사지는 광교산 비로봉에서 서측으로 약 500m 떨어진 계곡부 경사면 위쪽에 자리 잡고 있는 절터이다. 지금은 폐사된 절터로서 언제, 누가 창건하였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이곳에서 발견된 진각국사 탑비에 ‘고려 우왕 8년(1382) 국사(國師)를 지낸 천희(千熙, 1307~1385)가 이 절에서 입적하였다’는 내용을 통해 당시 창성사는 큰 규모와 높은 위상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절터에는 건물기단과 주춧돌, 옥개석, 기와조각, 석축 등이 남아 있었는데,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개년에 걸친 학술...

공공누리 상위 저작물은 수원시 홈페이지 저작권청책에 따라 담당부서와 협의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 담당부서 : 관광과 | 문의 : 031-228-3643
  • 만족도 조사 : 현재 열람하신 페이지의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가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