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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관광

수원의 국가유산

  • 김준룡장군 전승지 및 비
  • 김준룡장군 전승지 및 비

    이 비는 병자호란(1636년 12월~1637년 1월) 때 광교산에서 청나라 군사를 물리쳤던 김준룡(金俊龍, 1586~1642)장군의 전승지에 비 모양으로 암반에 글자를 새긴 것이다. 김준룡은 원주 김씨로 1609년(광해군 원년) 무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전라도 병마절도사에 재임하던 중 병자호란(인조 14)이 일어나자 병사를 이끌고 광교산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격전을 벌인 끝에 적장수였던 양고리(楊古利, 청 태종의 매부이자 후금 태조의 사위) 등을 사살하였다. 김준룡 장군은 1792년 정조대왕 때 ‘충양공(忠襄公...

  • 심온선생 묘
  • 심온선생 묘

    심온(沈溫, 1375~1418)은 조선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송, 자는 중옥(仲玉)이다. 조선 제4대 세종대왕의 장인으로 청천부원군에 봉군되었으며, 시호는 안효(安孝)이다. 공은 12세에 국자감 진사시에 급제 후, 1411년(태종 11)에 황해도 관찰사를 지내고 대사헌이 되어서는 관의 기강확립에 힘썼다. 이후 형조·호조·공조·이조판서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1418년(세종 원년)에 영의정이 되어 사신으로 명나라에 갔을 때 발생한 무술옥사(戊戌獄事)에 연루되었다는 모함으로 귀국 도중에 의주에서...

  • 팔달산 지석묘군
  • 팔달산 지석묘군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무덤으로 흔히 고인돌이라 부른다. 이 고인돌은 팔달산의 남쪽 일대를 두루 살필 수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수원시립 중앙도서관의 오른편 기슭을 따라 팔달산으로 조금 오르다 보면 편평한 구릉 위에 1호와 2호 고인돌이 서로 인접하여 있다. 이곳에서 위쪽으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3호와 4호 고인돌이 있다. 3호 고인돌의 하부 구조는 겉으로 드러나 있고, 그 옆에 덮개돌로 추정되는 돌이 흙 속에 묻혀 있다. 팔달산 고인돌의 덮개돌은 규모가 작고 두께는 두툼한 느낌을 준다. 가장 큰 것은 길이 1.8m, 두...

  • 아담스기념관
  • 아담스기념관

    아담스기념관은 1923년 6월 25일에 미국 아담스교회의 도움을 받아서 건립된 삼일학원 건물이다. 삼일학원은 1903년 미국인 선교사 W.스웨어러(W.swearer, 1871~1916, 한국명 서원보)가 15명의 소년들을 모아 시작한 교회 부설학교로, 처음에는 자체 건물 없이 중포산 기슭의 교회건물을 빌려 사용했었는데, 수원지방 감리사였던 목사 W.A.노블이 이 사정을 미국 아담스교회에 알려 교인들로부터 건립기금 2만엔을 기부받아 건물을 지었다. 미국 아담스교회 선교부가 설계하고, 중국인 왕영덕이 공사를 맡았다고 한다. 우진각 지붕...

  • 수원 축만제
  • 수원 축만제

    축만제(祝萬堤)는 1799년(정조 23) 화성의 서쪽 여기산 아래 길이 1,246척, 너비 720척이라는 당시로서는 최대의 크기로 조성된 저수지다. 이에 앞서 정조는 1795년에 장안문 북쪽에 만석거(萬石渠)를, 1797년에 화산 남쪽의 사도세자 묘역 근처에 만년제(萬年堤)를 축조했었다. 대규모 수리시설과 둔전 개간이 크게 성공하자 “농가의 이로움은 수리(水利)만한 것이 없다”고 인식한 정조는 만석거와 만년제의 3배 규모에 달하는 축만제를 조성하였다. 축만제의 규모는 문헌상 제방의 길이가 1,246척(尺), ...

  • 수원 여기산 선사유적지
  • 수원 여기산 선사유적지

    '수원 여기산(如岐山) 선사유적지'는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시대 마을 유적이다. 숭실대학교 박물관이 1979~1984년까지 총 4차례에 걸쳐 청동기시대 집자리(3기)와 원삼국시대 집자리(6기)를 발굴하였다. 여기산은 해발 104.8m의 산으로, 유적은 산 정상과 북서방향으로 뻗어 내린 능선상에 위치하며 행정구역 명칭에 따라 서둔동 유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청동기시대 집자리는 긴 네모꼴형태로 추정되며 구멍무늬토기와 석촉편 등이 출토되어 청동기시대 전중기 집자리로 판단된다. 원삼국시대 집자리는 남쪽에 돌출된 출입시설이 있는...

  • 창성사지
  • 창성사지

    창성사지는 광교산 비로봉에서 서측으로 약 500m 떨어진 계곡부 경사면 위쪽에 자리 잡고 있는 절터이다. 지금은 폐사된 절터로서 언제, 누가 창건하였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이곳에서 발견된 진각국사 탑비에 ‘고려 우왕 8년(1382) 국사(國師)를 지낸 천희(千熙, 1307~1385)가 이 절에서 입적하였다’는 내용을 통해 당시 창성사는 큰 규모와 높은 위상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절터에는 건물기단과 주춧돌, 옥개석, 기와조각, 석축 등이 남아 있었는데,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개년에 걸친 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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