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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관광

수원의 국가유산

수원 화성

  • 문화재 안내
문화재 안내(지정번호, 소재지, 지정일자)
지정번호 사적
시대 조선시대
소재지 수원시 팔달구 내
지정일자 1963.01.21
  • 기본정보
  • 수원 화성(華城)은 18세기 정조시대 성곽과 많은 부속건물, 도시 기반시설과 생산기반시설들의 총화로 이루어진 계획도시다.
    화성성역(華城城役)은 조선후기 변화하는 세계정세 속에 외래문화를 수용하면서 주체적이고 실용적인 태도, 전통적인 것을 토대로 새로운 것을 창안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에 의해 만들어졌다. 1794년 1월 7일 돌을 채취하는 것을 시작으로 26일 총리대신(總理大臣 : 화성성역 총책임자)에 우의정 채제공(蔡濟恭, 1720~1799), 감동당상(監董堂上 : 공사현장 총감독)에 화성유수 조심태(趙心泰, 1740~1799)를 임명하여 사업을 진행하였으며, 국왕 및 신하, 일반 백성의 노력이 총결집되어 2년 9개월만인 1796년(정조20) 9월에 공사를 마친 뒤, 10월 16일 낙성연(落成宴)을 열고 완성하였다.
    사적 제3호로 지정된 화성은 전체 길이 27,600척(4,600보)으로 대부분 돌로 쌓았으며, 일부 중요한 방어 시설은 벽돌로 쌓았다. 4개의 성문과 5개의 암문, 2개의 수문, 2개의 은구, 2개의 장대, 2개의 노대, 3개의 공심돈, 4개의 각루, 5개의 대포를 설치한 포루, 1개의 봉돈, 8개의 치, 3개의 포사 등이 있었으며, 이 중에는 아직 미복원 상태의 시설물도 있다.
    화성성역은 국왕 정조의 장기적 정치 구상에 따라 정치적·군사적 거점으로 추진되었지만, 이는 조선왕조의 발전방향이나 당시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면서 새로운 상업과 농업, 교통과 상품 유통의 중심도시로 건설되었다.
    ‘성곽의 꽃’으로 불리는 수원 화성은 조선의 고유한 성곽 특징을 잘 갖추고 있으면서도 조선 후기까지 축적된 전통적 성곽 건설 경험과 중국으로부터의 최신 과학 지식을 수용한 뛰어난 성곽으로 평가 받아 1997년 12월 UNESCO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수원 화성
  • 위치 (소재지)
  • 지도 들어가는 곳
  • 수원관광정보갱신일 : 2024년 0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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