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가 우의정 조현명(趙顯命 1690~1752)에게 직접 써서 내린 어필 5첩이다. 1739년(영조 15) 도목정사(都目政事) 때 문관을 심사한 이조 전형관 조현명에게 영조가 써서 내려준 사언구(四言句)의 칙유(勅諭)인 《대정일면유어서(大政日面諭御書)》 1첩, 1743년(영조 19)과 1745년(영조 21) 그리고 1746년(영조 22)에 조현명의 사직 상소에 대해 영조의 답변을 각각 써서 내려준 《수서비답(手書批答)》 등 3첩이다. 또한 조현명이 약방(藥房) 도제조(都提調)에 제수된 당일 영조의 진찰을 위해 입시하자 감회가 일어 난 영조가 시를 써서 하사한 《주상전하어시어필(主上殿下御詩御筆)》 1첩이다. 서첩은 모두 무늬비단으로 꾸며져 있고 내지 앞뒤에 색종이를 붙이는 등 유사한 방식을 보인다. 각 서첩 겉표지의 제목 글씨는 모두 예서로 쓰여져 있다. 서첩 내용의 어필은 영조 재위 시절의 전형적인 서풍을 보이고 있다.
조현명의 본관은 평양(平壤)이며 1719년(숙종 45) 문과 급제하여 영조가 왕세제(王世弟)로 책봉되었을 때부터 보호에 힘썼다. 1728년(영조 4) 무신란(戊申亂)을 진압한 공로로 분무공신(奮武功臣) 3등에 녹훈되었으며 풍원군(豊原君)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