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성] 공심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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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심돈(空心墩)
공심돈은 벽돌로 3면에 섬돌을 쌓고 그 가운데를 비워 둔 군사용 시설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화성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성곽 시설물이다. 일종의 초소 구실 을 하는 돈대(墩臺)로서 높게 쌓아 공격용 시설물을 설치하였다. 높은 돈대는 가 운데를 구분하여 판자로 루(樓)를 만들어 상·하층으로 구분하고, 사다리를 설치 하였다. 그리고 위 아래로 구멍을 많이 뚫어서 바깥의 동정을 엿보고 공격할 수 있게 만들었다. 불랑기(佛狼機 : 총포의 일종), 백자총(百字銃) 등을 발사하여 도 적이 화살이나 총탄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①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서북공심돈은 화서문 바로 옆 북치(北雉) 위에 있으며 1796년(정조 20) 3월 10 일 완성되었다. 이 공심돈은 화서문 방면의 방어를 위하여 설치한 것으로서 서쪽 과 북쪽 2면에 현안 두 개씩을 내었다. 벽돌로 대를 쌓고 그 위에 집을 지었다. 돈대는 상·중·하 삼층으로 구분하여 청판을 설치하였고 층마다 벽면에 포혈 20 개를 내었다. 상층의 벽면 위쪽은 판문을 둘렀으며 판문마다 각각 전안(箭眼 : 화살 구멍)을 뚫었다. 중층과 상층에는 개판(蓋板) 하나로 밀고 당겨 여닫게 되 어 있으며 사다리를 설치하였다. 하층 내면에는 작은 홍예문을 만들어 출입하도 록 하였다. 1797년(정조 21) 1월 원행시에 정조는 성을 순행하며 이 곳에 이르러 신하들에 게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만든 공심돈이니 마음껏 구경하라”고 하며 만족감을 표시하였다. ② 남공심돈(南空心墩) 남공심돈은 남암문 옆에 성곽이 직각으로 꺾이는 지점에 있으며 남수문 방면 의 방어를 위하여 설치한 것으로 건축 구조가 서북공심돈과 같으나 규모가 약간 작다. 한가운데에 돈대를 벽돌로 쌓고 담안쪽의 3면에는 공간을 두어 군사들이 전투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하였다. 동쪽과 남쪽 2면에 현안 두 개씩을 내었고, 각 방향으로 2개의 총 안(銃眼 : 총을 쏘는 구멍)을 뚫어 놓았다. 대 위에 성가퀴를 설치하고 1칸짜리 집을 지었다. 1795년(정조 19) 10월 18일 완성되었으나, 일제 침략기에 유실된 후 남수문 일대가 시장으로 확대되면서 현재는 미복원 상태이다. ③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 동북공심돈은 동북노대의 서쪽 60보 거리에 성 안쪽을 돋구어 쌓은 지점 위 에 있다. 1796년(정조 20) 7월 19일 완성되었다. 이 공심돈은 인근의 창룡문과 동장대를 동시에 응원할 수 있는 위치로 중국 요동(遼東)에 있는 계평돈(계平墩) 을 본떠서 벽돌로 둥그렇게 돈대를 만들었다. 안쪽 원과 바깥 원 사이에는 4척 5 촌의 공간을 비워두어 군사들이 몸을 가리게 되어 있다. 바깥쪽으로 상부 26개, 하부 14개의 총안을 뚫었고, 그 구멍으로 햇빛이 들어오도록 하였다. 위아래 층은 개판으로 구분하였고 아래층에서 벽을 따라 나선형으로 벽돌 계단 을 이용하여 위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아래층 안쪽에 벽돌로 작은 홍예문을 만 들어 출입하였다. 또 문 동쪽의 빈 공간을 이용하여 온돌방 한 칸을 지어 놓았으 며 사각형의 구멍을 창문으로 삼아 군사들이 출입하게 되어 있다. 내부가 소라처 럼 나선형으로 생겼으므로‘소라각’이라고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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