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선구] 권선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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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동(勸善洞)
⊙ 권선동·상권선·하권선 고려 말 한림학사 이고가 벼슬을 내놓고 이 곳에 살면서 후진들을 위하여 어질 고 선함을 가르쳤으므로 권선리, 권선동이라 하였다. 이고는 평소에 효성이 지극 하였다. 사람들에게 항상 가르침을 주기를‘자기와 이웃에 항상 착하게 살아라’ 라고 일러왔다. 인근 사람들은 그 분의 높은 인품과 가르침에 따라 착하게 살게 되었다. 그후 이 마을의 이름을 권선리라고 불렀다. 권선동은 예전에는 들을 사 이에 두고 위, 아래의 두 마을로 나뉘어 있었다. 윗쪽 뜸을 윗 권선(상 권선), 아래쪽 뜸을 아랫 권선(하권선)이라 불렀다. 현재 인구의 증가로 인하여 농수산 물 도매 시장 남쪽 도로를 경계로 아랫쪽(남쪽)은 곡선동사무소에서, 윗쪽(북쪽) 은 권선동사무소에서 관할하고 있다. ⊙ 새터·새말 권선 주공 아파트 동쪽에 있던 마을로, 새터·새말이라 불리었다. 새로 생긴 마을이란 뜻이다. 지금은 택지 개발에 밀려 옛 모습을 찾기 힘들다. ⊙ 서당 권선동 은행나무 밑에 금대영의 부친(금주사)의 집이 있었는데, 이 곳에서 서 당을 운영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큰 서당은 아니었고 규모가 작은 개인 서당 이었다. 학생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 신라물 제언(新羅勿堤堰) 『수원부읍지』제언편에 따르면 장족면(長足面)에 있는데, 둘레 940척, 깊이 3척 이라고 하였다. 『화성지』에는 신수원부 치지로부터 동쪽으로 10리 장주면(章洲 面)에 있다고 하였다. 장족면은 1890년대에 장주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제 언은 지금의 권선동, 원천동, 영통동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압각수(鴨脚樹) 고려 때 한림학사였던 이고가 자기 집터에 심었다는 은행나무이다. 권선 종합 상가 동북쪽인 권선동 노인 회관 앞마당에 있다. 권선동 533-4번지이다. 이 은행 나무는 권선징악의 높은 뜻을 기리고 있다. 은행나무의 높이는 25m, 가슴 높이 의 둘레가 4.4m이며 수령은 약 40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원시의 나무로 지정 되어 있다. ⊙ 올림픽 공원 권선동 1012번지에 있는 공원으로‘88 공원’이라고도 불린다. 지난 1988년 서 울 올림픽 개최를 기념하기 위하여 1987년에서 1988년 사이에 조성된 이 공원은 총 면적이 58,454㎡이며, 잔디 면적은 30,000㎡이다. 주요 시설물로는 12개의 올 림픽 조형물을 꼽을 수 있는데,이 시설물들 때문에‘조각 공원’이라 불리기도 한다. ⊙ 용화출(龍化出) 마을 권선 동쪽에 있는 용화출 고개 밑에 있던 마을로 옛날 이 고개에서 용이 나왔 다고 하여 생긴 지명이다. 지금은 택지 개발로 마을이 없어지고 아파트와 선일 초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이 고개 근처에 수원시 화장장이 있다. 또 다른 유래는, 임광 아파트 뒤쪽의 산의 모양이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기 직 전의 모습과 같다고 용화출이라고 했다는 설도 전해진다. 또한 용이 비상하기 직 전의 모습이 아니라 하늘로 비상하고 난 후 그 터가 빈 모습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용화출 마을의 유래는 모두 용과 관련되어 있다. ⊙ 이학사 집터 이고의 집터를 말한다. 이학사가 벼슬을 내놓고 이 곳에 살면서 세상의 모든 일을 잊어버린다는 뜻으로 호를 망천(忘川)이라 하고 숨어 살았다. 조선의 태조 가 여러 번 불렀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 세종 대왕은 이고의 뜻을 가상이 여 겨 돌비를 내려‘고려 효자 한림학사 이고의 비[高麗孝子翰林學士李皐之碑]’라 하여 크게 찬양하였다. 그후 금대영이란 사람의 부친이 이 곳에서 살았다. 그분 이 지식이 높아 금주사라고 불렸다. 주사란 벼슬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동네에서 어른 대접을 받은 지식이 많은 사람의 호칭이었다. 금주사는 이 곳에서 서당을 만들어 교육에 힘썼다고 한다. ⊙ 장교 제언(長橋堤堰) 『수원부읍지』제언편에 따르면 장족면에 있고 둘레 1,051척, 깊이 1척이라 하 였다. 또 『화성지』에는 신수원부 치지로부터 동쪽 10리 장주면에 있다고 하였 다. 길이가 800척, 넓이 430척, 높이 4척, 두께 4척, 깊이 3척5촌, 수문 두 군 데, 저수지 물로 농사지을 수 있는 논(몽리답)은 50섬지기라고 하였다. 앞에서 말한 신라물 제언과 위치가 비슷하다. ⊙ 장다리 권선동 북서쪽 남수원 전화국과 권선 초등학교 사이의 큰 도로는 예전에 개천 이었으며, 이 개천에는 장다리라고 부르는 다리가 있었다. 개천은 지금 현재 복 개 공사로 인해 도로가 되어 있다. ⊙ 적사리 제언(赤寺里堤堰) 『화성지』제언편에 따르면 신수원부 치지로부터 동쪽으로 10리 장주면에 있다. 길이 552척, 넓이 390척, 높이 4척, 두께 4척, 깊이 1척 수문 두 곳, 몽리답이 12섬지기라고 하였다. 권선리는 적사리라고도 불려졌다. 그러므로 적사리 제언 은 지금의 권선동에 있었다. 옛 자료를 토대로 살펴볼 때 권선동에는 저수지가 여러 곳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조대 권선 초등학교 옆 복개천은 조대라고 불렀다. 옛날 한림학사 이고가 이 곳에 서 낚시를 하였다고 한다. ⊙ 중간말 중간말은 상권선과 하권선의 경계 지점에 있었던 마을이다. 야트막한 산등성이 가 있고 대여섯 집이 모여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도로 교통 안전 협회에서 세 곡 초등학교 선상이라고 하나 확실치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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