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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역의 첫 이름, 모수국
작성자 수원시청 작성일 2002/02/06 조회 12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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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지역의 첫 이름, 모수국
언제부터 우리 조상들이 수원에 살았을까요? 그것은 대략 10만년 전부터였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10만년 전이라니,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지요. 이 시기를 보통
구석기 시대라고 부릅니다. 구석기 시대는 돌을 깨뜨려 만든 도구를 사용했던 시
기였습니다.
이때부터 조상들이 살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구요? 그것은 파장동과 수
원 지역의 곳곳에서 그 시대의 유물이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물이 발견됐다
는 것은 그 시대에 사람들이 살았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구석기 시대에 수원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가, 대략
5,000년 전쯤인 청동기 시대에 다시 돌아와 이곳에 터를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수원 지역에서 중석기·신석기 시대의 유물은 보이지 않고, 청동
기 시대의 유물만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어떤 유물이냐 하면, 바로 고인
돌입니다.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 고인돌이 수원 지역 곳곳에서 발견되
고 있습니다. 고인돌이란 커다란 돌로 만든 옛날 조상들의 무덤이에요. 또 다른
유적으로는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를 들 수 있습니다. 서둔동 여기산에서 발견된
집터 유적을 통해서 이곳에서도 오랫동안 사람들이 머무르면서 생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청동기나 철기를 사용하던 시절, 수원 지역에도 작은 나라가 세워졌습니다. 단
군 할아버지가 고조선을 세우시고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한반도 남쪽에서는 삼
한, 즉 마한·진한·변한이라는 세 나라가 세워졌습니다. 그때 수원 지역은 ‘모
수국’이라고 하였는데, 바로 마한의 작은 나라였습니다. ‘모수국’이라는 이름
이 수원의 최초의 이름이지요.
이후 삼한은 없어지고 한반도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이 서로 경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대를 삼국 시대라고 합니다. 삼국 시대는 서로 영토를 넓게
차지하기 위해, 특히 우리 나라의 중심 지역인 한강 유역을 놓고 많은 전쟁을 벌
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원은 처음에는 백제의 영토였다가, 고구려가 다스리는
땅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500년 전쯤의 일입니다.
한편 수원을 차지한 고구려는 수원 지역의 이름을 ‘매홀’이라고 고쳤습니다.
‘매홀’이 무슨 뜻이냐구요? ‘매홀’은 물이 많은 곳을 의미합니다. 수원은 대
대로 물이 풍부해 이름에 항상 ‘물’이라는 뜻이 담겨 있어요.
이후 신라가 크게 성장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무너뜨리고 삼국을 통일한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요. 이때를 우리가 흔히 통일 신라 시대라고 부릅니다.
삼국이 통일되고 다시 90년 가까이 지난 뒤 수원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이 또 한
번 바뀌게 되었습니다. 즉 경덕왕이 다스리던 757년에 ‘매홀’이라고 불렀던 수
원을 ‘수성군’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역시 물이 많은 곳이
라는 뜻이 담겨져 있어요.
삼국 시대와 통일 신라 시대의 수원 지역은 중국과의 왕래를 위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어요. 그래서 이곳을 차지하려고 서로 싸운 것도 사실이에요. 당시 이곳
에 ‘당성’ 혹은 ‘당항성’이라고 부르는 성을 쌓아서 바다에서 쳐들어오는 외
적도 물리치고 우리 나라 배도 보호하면서 중국과의 왕래를 편하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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