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통구] 원천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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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동(遠川洞)
⊙ 가산골 아주 대학교 운동장 뒤쪽 지역에 있던 마을이다. 원천동 산 5번지 일대이다. 가씨(價氏) 집안이 거주하였던 골짜기 마을이어서‘가산골’이라 불렸다고 한다. ⊙ 구렁골 고개 안영통과 뒷골을 연결하는 고개이다. 이 고개 근처에는 평산 신씨들이 많이 살 았다고 한다. ‘구렁골’이라는 이름은 옛날 구렁이가 많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 진 것이라 한다. 이 고개의 이름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 다. 예전에 이 고개 근처에는 평산 신씨 성을 가진 천석꾼이 살았다고 한다. 사람 들이 왕래가 많았던 고개라서, 이 곳을 넘나드는 사람들이 그 천석꾼 집안에 많 이 찾아 들고 쉬었다 가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 집은 손님 접대하는 일에 일손 이 많이 들게 되었다. 그러자 이 집 며느리가 재산이 축나는 것을 염려하게 되었 고, 손님 줄이는 방법을 궁리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지나가던 스님이 찾 아와서 쉬어가게 되었다. 이에 며느리가 스님에게 손님을 줄이는 방법을 일러달 라고 사정을 하였다. 이에 스님은 뒷골과 황골(안영통)을 연결하는 고개를 막아 버리고, 부엌문 양쪽에 숯을 한 가마씩 묻어 놓고 숯이 깨지도록 밟고 다니면 손 님이 찾아들지 않을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그리하여 며느리가 사람들을 사서 이 고개에 돌을 쌓아 막아 버리고 부엌에 숯을 묻어 밟고 다녔다. 그랬더니 과 연 집안에 찾아드는 손님이 없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천석꾼 이었던 그 집안은 재산이 줄어들게 되었다. 집안에 손님이 없어지자 세상이 어떻 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던 탓에, 재산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고 조금씩 잃어 버리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해방 후에 뒷골과 황골 사람들이 이 고개를 다시 이용하기 위하여 고개에 쌓여 있던 돌들을 치웠다. 그 과정에서 실제로 자연스런 돌이 아니라 사람의 손이 간 흔적이 있는 돌이 많이 나왔다. 이때 치워낸 돌로 뒷골에서는 우물 2개를 쌓았다 고 한다. 그리고 돌을 치우는 과정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는 구렁이가 허리가 잘 린채로 나왔는데, 이러한 까닭에서‘구렁골’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 이야기와는 달리, 신씨가 큰 집을 짓고 살았는데 자꾸 거지들이 몰려 와서 고개를 막아 버렸으며, 신씨가 망해서 광주로 옮겨가고, 그 후 고갯길을 다시 뚫 었을 때 피가 흘렀는데, 구렁이 허리가 잘려서 흐른 피라고 하여‘구렁골’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 구석골·구석집 영통 큰말에서 뒷골로 넘어가는 작은 구릉에 위치했던 마을로 큰말에 속하는 동네이다. 큰말에서 가장 후미진 곳에 있어서‘구석골’또는‘구석집’이라고 불 리었다고 한다. ⊙ 궁말·궁촌(宮村) 먼내 북서쪽에 있었던 마을이다.‘궁말’또는‘궁촌(宮村)’이라고 불린다. 원 천동 96번지에서 99번지 일대로, 현재 삼부자 갈비집이 자리하고 있는 주변을 말 한다. 삼부자 갈비집이 자리한 곳은 옛날 말죽을 쑤어서 말에게 먹이던 자리였다 고 한다. ⊙ 나촌말 먼내 동쪽 원천천(遠川川) 건너에 있는 마을로, 원천동 3통 지역이다. 나씨(羅 氏)가 이곳에 정착하여 집성촌을 이루어 살기 시작한 이후로‘나촌말’이라 불리 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에도 이 마을에는 나씨가 많이 살고 있다.‘나촌(羅村)’ 이라고도 불리는 이 마을은 지금 공업 단지가 형성되어 공장이 많이 들어서 있 다. ⊙ 안말·내촌(內村) 나촌말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원천동 4통 매원 노인정이 있는 지역이다. 안쪽 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안말’또는 한자식 이름인‘내촌(內村)’이라 불린다. 이 마을은 현재 공업 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 넘말·양짓말 신나무실에 있었던 마을이다. 웃말에서 이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야트막한 작 은 고개를 넘어다녀야 한다고 해서‘넘말’이라고 불렀다고 한다.‘양짓말’이라 고도 한다. ⊙ 느티나무 1 영통 1047-3 번지에 있는 노거수이다. 영통사(靈通寺) 남쪽 100m 지점에 있 는, 400년 이상 묵은 느티나무이다. 매년 음력 5월 5일 단옷날에는 이 곳에서 동 네 사람들이 풍물을 치면서 마을의 안녕을 빈다고 한다. 현재도 이 장소는 중요 한 마을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광장이자 휴식 장소로 쓰이고 있다. ⊙ 느티나무 2 영통 황곡 초등학교 앞 도로 가운데에 있는 노거수이다. 큰황골의 천석꾼이었 던 경주 최씨(또는 경주 김씨)가 이 곳에 살면서 심었다고 전해진다.나무 나이 는 약 200여 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 느티나무골·느티 마을·앞말 큰말 남쪽에 있었던 마을이다. 현재 건영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약 300년 묵은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 이어서‘느티나무골’또는‘느티 마을’이 라 불렸다. 마을 중앙에 있는 이 느티나무는 1790년(정조 14)에 이 나무의 가지 를 잘라 화성(華城)의 서까래로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 한때 관리 소홀로 고사 (枯死) 직전에 이르렀으나, 마을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되살렸다. 마을 사람들 은 매년 단오에 이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단오제를 지낸다.‘앞말’이라고도 불렸 다고 한다. ⊙ 당골 아주 대학교 병원 뒤쪽 행정관 주변과 방울재로 넘어가는 일대의 골짜기 마을 이다. ‘당골’이라는 이름은 이 마을이 당씨(唐氏)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었 기 때문이라 한다. 이에 따른다면 ‘당씨 마을’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하지 만 이 곳에 산신제를 지내는 당집과 샘물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어,‘당 이 있는 골짜기 마을’이라는 의미로도 추정할 수 있다. ⊙ 당집 우물 아주 대학교 병원 뒤쪽 당집터 주변에 있는 우물터이다. 당제를 지낼 때 이 곳 에서 물을 길어다 썼었다고 한다. 현재는 마을 사람들의 약수터로 이용되고 있 다. ⊙ 당집터 아주 대학교 병원 뒤쪽에 있었던 산신당이다. 인근의 역말 사람들이 수호신으 로 섬기던 산신에게 제를 지내던 신당이었으나, 현재는 완전히 없어지고 우물터 만 남아있다. ⊙ 대추골 합동 신학 대학과 아주 대학교 병원 사이에 있는 골짜기이다. 원천동 48번지 와 49번지 일대이다. ⊙ 도깨비산 신나무실의 웃말과 넘말에 위치한 야산이다. 신나무실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이 곳을 지나갈 때 도깨비에 홀린 듯이 바로 집으로 가지 못하고 다른 곳을 배 회하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곳에 도깨비가 있다고 생각하고, ‘도깨비산’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 독침산·독지미산 영통 열병합 발전소 뒷쪽(동남쪽)에 있는 해발 109m의 산이다. 청명산에 비하 여 낮고 완만한 경사면을 보이고 있다. 뱀이 많아서‘독침산’이라 부른다는 유 래가 전해지지만 신빙성이 없다.‘독지미산’이라고도 부른다. ⊙ 돌고개·석현(石峴) 영덕에서 용인으로 가는 고개이다.‘돌고개’또는 이의 한자식 이름은‘석현’ 은 돌이 많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 한다. 현재는 신갈 인터체인지 진입로로 이용되고 있다. ⊙ 뒷골 독침산 북동쪽에 있었던 마을이다. 현재 중학교와 초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뒷골’이라는 이름은 영통 지역에서 가장 후미진 곳이라 해서 붙여진 것이다. 수원, 용인, 태안, 오산 등 어느 지역에서도 2, 30리 길을 가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교통이 좋지 않고, 장을 보러 다니기도 매우 불편한 마을이었다. 이와 는 달리 큰말에 비해서 뒤에 생긴 마을이어서‘뒷골’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 기도 전한다. ⊙ 등취골 원천동 147번지에서 151번지 일대에 있는 골짜기이다. 청송 가든 뒤쪽 지역으 로, 현재 새 농장이 있다. ⊙ 말통골 원천동 380번지에서 400번지 일대에 있었던 마을이다. 말이 쉬어가는 곳이라 는 의미에서 ‘말통골’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와는 달리‘말통골’ 이란 이름은‘말통 고을’에서 ‘망통 고을’로 변한 것이 다시 변화된 것으로, 옛 고관 대작이 말을 타고 지나간 데서 유래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현재 는 필립스 전자 등 중소 기업 공장들이 들어서 있는 공단 지대가 되었다. ⊙ 말티 고개 영통 손실에서 서천리로 넘어 가는 고개이다.‘말티 고개’라는 이름은 손실에 서 살던 손씨들이 기르던 말들의 발굽을 이 곳에서 달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 로 추측하고 있다. 손실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손씨들이 이 고개의 높이 를 낮추고 길을 넓혀서 망했다고 한다. ⊙ 망가동·망개동 망포동 태장 초등학교 건너편에 있는 마을이다.‘망가동’또는‘망개동’으로 불린다. ⊙ 먼내·머내·원천 원천동 190번지에서 209번지 일대에 있는 마을이다. 원천동 2통 지역으로 원 천 유원지 아래쪽에 있다. 수원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있는 내라고 하여,‘먼 내’라 불리는 천(川) 주변에 있는 마을이어서 동일한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 다. 한자식 표현인‘원천(遠川)’, 그리고 ‘먼내’에서 ㄴ이 탈락된‘머내’등 의 이름으로도 불린다. 옛날 이 마을에는 소를 팔러가기 전, 소에게 여물을 든 든히 먹여주던‘우방’이라는 곳이 있었다고 한다. ⊙ 방아 다리 영통 방죽골 아래쪽(남쪽) 지역에 있었다. 예전에는 이 곳에 방앗간, 정미소 등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모두 사라졌다. ⊙ 방죽골 영통 신나무실 서쪽에 있었다. 1950년대 태안 평야의 수리(水利) 시설 확충을 위해 신나무실의 비교적 낮은 지역인 이 곳에 방죽을 쌓고 저수(貯水)하였던 데 서, 이러한 지명이 생긴 것이라 한다. ⊙ 방죽머리·망포·원망포 태장 초등학교 남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조선 중엽에 이 곳에 방죽을 쌓았는 데, 이 마을이 커다랗게 쌓은 방죽 근처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방죽에 서 흘려보낸 물이 쭉 흘러나오다가 이 부근에서 우측으로 돌아나가게 되는데, 이 곳이 물길에 머리를 쳐든 형상이라 해서‘방죽머리’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 다. 1914년 방죽머리를 중심으로 근처에 있는 당암(堂岩), 우문(牛門)을 합하여 망포리라 부르게 되었는데, 이러한 연유로‘방죽머리’를‘망포’또는‘원망포’ 라고도 부른다. ⊙ 벌터 현재 삼성 코닝이 있는 자리는 예전에 넓은 벌판이었고, 이 곳에 10~15가구 정 도의 작은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이 마을은‘벌터’,‘평촌(坪村)’,‘평말’등 으로 불리었는데, 모두 넓은 벌판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 방울재산·바울재·바울제 합동 신학 대학 뒤쪽에 있는 산이다. 원천동과 이의동을 잇는 고개인 방울재 가 있어서‘방울재산’이라 불린다고 한다.‘바울재’또는‘바울제’라고도 불리 는 이 산은 3·1 운동의 본거지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 벽적(擘積)골 신나무실골 아래쪽(남쪽)에 있었던 마을이다. 영통 972번지에서 973번지 일대 이다. ‘벽적골’이라는 이름은 여주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이 곳에서 벽돌을 구 워 살았다고 해서 ‘벽적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영통 신도시 개발 로 인하여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어 옛 마을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고,‘벽 적골 주공 아파트’,‘벽적골 태영 아파트’등의 이름에서만 그 자취가 남아있 다. ⊙ 비루물 원천동 127번지에서 135번지 일대의 논 지역을 부르는 이름이다. 중앙 초등학 교 양쪽 지역을 말한다. 이 곳에는 지금도 농사에 필요한 물을 대던 연못이 남아 있다. ⊙ 상부 고개·상부 고개 마을 신갈 고속 도로 인터체인지 진입로에서 황골로 들어가는 고개이다. 황골과 기 와집말을 연결하는 지름길이다. 이 고개 밑에는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 마을을‘상부 고개 마을’이라고 한다. ⊙ 살구나무골·살구골 영통 988번지에서 989번지 일대에 있었던 마을이다. 경희 대학교 남서쪽에 있 다. 살구나무가 많았던 마을이라서‘살구나무골’또는‘살구골’이라 불리게 되 었다고 한다. 현재는 삼익 아파트, 동아 아파트 등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 어 옛 마을의 자취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 새마을 고개 원천동 사무소에서 여수내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이다.‘새마을 고개’란 이름 은 여수내 마을이 새롭게 형성되면서,‘새롭게 생긴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란 의미에서 유래된 것이라 전해진다. ⊙ 새터 원천동 77번지에서 78번지 일대에 있었던 마을이다. 역말 앞쪽에 있으며, 현 원천 중학교와 정보 산업 고등학교 일대를 말한다. 원래 이 곳은 주로 논과 밭 이 있었던 지역이었으나, 현재는 택지로 변했다. ⊙ 새터말·사탄말 영통 독침산 동쪽에 있었던 마을이다. 느티나무골에서 남쪽으로 약 200m 거리 에 위치한 마을로 이천 서씨 묘역이 들어선 마을이다. 주로 해방 후에 이주해 온 사람들이 모여산 동네로, 큰말이나 느티나무골에 비하여 새로 생긴 마을이라 서‘새터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사투리로‘사탄말’로도 불린다. ⊙ 샘말 말통골 건너편 영통 주공 5단지 일대에 있었던 작은 마을이다. ⊙ 샘말·천죽(泉竹) 신나무실 서쪽에 있었던 마을이다.‘샘말’이라는 이름은 이 곳에 좋은 샘이 있어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천죽(泉竹)’이라고도 불리는데 하는데, 이 곳에 있던 샘이 대나무가 쭉 뻗어나듯이 솟구쳐 올랐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 한다. ⊙ 샘말 고개·찬우물 고개 황골에서 큰말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영통사가 이 고개에 위치하고 있으며, 청 명산 약수터로 올라가는 입구이다. 이 곳에는 예로부터 차고 좋은 우물이 있었다 고 하며,‘찬우물 고개’라는 이름도 이에서 연유한 것이라 한다. 현재도 영통사 의 우물과 같은 좋은 우물이 남아있다. ⊙ 서낭당 터 1 원천동 80-15번지에 있는 당터이다. 현재 영락 교회가 들어서 있다. 역말 사람 들이 주로 모시던 당이 있었던 곳으로, 수 백년 된 참나무와 소나무가 있었다 고 한다. 지금은 교회가 들어서면서 나무들은 모두 베어져 아무런 자취도 남아 있지 않다. ⊙ 서낭당 터 2 원천동 155번지에 있던 옛 서낭당이 있었던 자리이다. 원천 유원지 입구 여수 내 마을 사람들이 당제를 지내던 당으로, 원천 유원지가 개발되면서 사라졌다. 현재 그 자리에는 한아름 노래방이 있다. ⊙ 서낭당 터 3 현재 신명 초등학교가 있는 자리에 옛날 이 근처 마을 사람들이 모시던 서낭당 이 있었다고 한다. ⊙ 손실(孫室) 경희 대학교 수원 캠퍼스 정문에서 약 500m 정도에 있었던 마을이다. 손씨(孫 氏)들이 살던 곳이어서‘손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곳에서 전해지 는 다음의 이야기도 손씨와 관련된 것이다. 손실에 사는 손씨들은 상당한 부자였다고 한다. 이 곳에 커다란 기와집을 짓 고 근처의 땅에 소작을 주어 경영하던 부자였지만, 인심은 아주 고약했다. 하루 는 지나가던 스님이 시주를 부탁했는데, 손씨 집안에서 고작 쌀 한 되만을 내 놓 았다. 스님은 이를 괘씸히 여겨, 더욱 잘살게 되는 비법을 알려주겠다고 하면 서, 서천리와 통하는 말티 고개를 낮추면 더욱 큰부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에 손씨 집안에서는 그 고개를 깎아 길을 넓히고 높이도 낮추었다. 그런데 고개 의 높이를 낮추고 길을 넓히자, 재물이 오히려 많이 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손씨 들은 얼마가지 않아서 망하게 되었다. 그들이 살던 터에서는 최근까지 깨진 기와 와 생활 도구들이 많이 나와서 이 이야기의 근거를 제공해 주었다고 전한다. ⊙ 쇠시랑골·세시랑골 현재 아주 대학교 병원이 있는 지역이다. 이 곳은 예전에는‘쇠시랑골’,‘세 시랑골’등으로 불리었던 골짜기였다고 한다. ⊙ 쇠죽골 원천동 80번지 일대를 일컬었던 골짜기 이름이다. 현재 법원과 검찰청이 자리 하고 있다. ⊙ 신나무실 열병합 발전소 서남쪽 지역에 있던 마을이다.‘신나무실’이라는 이름에서‘신 (莘)’자는 개나리 신자로, 이 마을에 개나리가 많았던 연유에서 유래한 것이라 전해진다.‘신동(莘洞)’이라는 법정동 이름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현재 개나 리는 거의 없지만, 동네 나무로 개나리가 지정되기도 하였다. 옛날에는‘장죽’ 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이 마을은 탐진 최씨(耽津 崔氏) 부호군파(副護軍派)가 대대로 살아온 집성촌 이었다. 현재는 영통 신도시 개발로 쌍용 아파트, 주공 아파트, 신원 아파트 등 이 들어서 있어서 옛 마을의 모습을 찾기가 어렵다. ⊙ 쑥고개 손실 남쪽에 있는 고개이다. 현재 경희 대학교 수원 캠퍼스에서 금융 연수원 근처에 있다. 손실 마을 사람들과 신나무실 마을 사람들이 많이 넘나들던 고개였 으며, 예전에는 초등학교 소풍 장소로도 많이 이용되던 곳이라고 한다. ⊙ 안말 원천동 4통 매원 노인정이 있는 지역이다. ⊙ 안영통·내영통(內靈通) 구렁굴 고개 밑 황골 지역에 위치했던 마을이다.‘안영통’혹은‘내영통’이라 는 이름은 이 곳이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전에는 영통리 지역에 포함되었다가, 개편 후에 황곡 지역으로 다시 바뀌면서 영통리의 안에 있었다는 의미에서 부르 기 시작한 것이라 한다. ⊙ 양지말 영통 황골에 있는 마을이다. 응달말 동쪽에 있다. 양지 바른 마을이라 해서 ‘양지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 여수내 원천동 5통 지역에 있는 마을이다. 현재 원천 유원지 입구 마을을 말한다. 이 의동에 있는 여수내 마을과도 어떤 연관이 있을 듯 하다. ⊙ 여우골 원천동 111번지 일대에 있는 골짜기이다. 현재 국립 지리원이 있는 곳이다. ‘여우골’이라는 이름은 옛날에 여우가 많이 살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 여우 우물 독침산 북쪽에 위치한 샘물이다. 은행나무골에서 신리로 가는 길 옆에 샘이 있 다. 수량(水量)은 많지 않고 졸졸 흐르는 정도이다.‘여우 우물’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살던 여우와 늑대들이 이 샘에서 물을 마셨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 전해 진다. 이와는 달리, 이 샘에서 나오는 물의 양이 마치 여우가 오줌누는 것처럼 조금씩 나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 역말·역촌(驛村)·장족역말 ·윗 역말·아랫 역말 원천동 1번지에서 120번지 일대를 일컫던 마을 이름이다. 아주 대학교 병원 동 쪽, 법원과 검찰청 주변 일대이다. 옛날 이 마을에 역(驛)이 있었던 연유로 역 근처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로‘역말’또는‘역촌’이라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 다. 이 곳은 원래 양재도(良才道)에 속한 장족역(長足驛)이 있었다고 해서,‘장족 역말’이라고도 불린다. 『여지도서(輿地圖書)』,『수원부읍지(水原府邑誌)』에 는 장족역이 부(府)의 북쪽 25리 지점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장족면(長足 面)이 부(府)의 북쪽 20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하였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부의 동쪽 30리 지점에 장 족역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화성을 축조하면서 읍치(邑治)를 팔달산 밑으로 옮기면서 장족역의 방향이 읍치를 중심으로 뒤바뀐 것이지만, 그 위치가 약간씩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장족역의 역말은 현재 원천동 1, 6, 7, 8, 9, 18, 19, 25통과 원천아파트 8개통 일대였다고 한다. 『여지도서』에 의하면 장족역에는 대마(大馬) 1필, 기마(騎馬) 2필, 복마(卜馬) 2필, 노(奴) 5명이 배 정되어 있었고, 『수원부읍지』에 의하면 대마 2필, 기마 9필, 복마 2필, 노 13 명이 있었다 한다. 원천 쪽에 있는 마을을‘윗역말’, 그 반대쪽에 있는 마을을 ‘아랫역말’이라 나누어 부르기도 한다. ⊙ 오리 우물 원천동 영통 초등학교 근처에 있었던 우물이다. 이 우물은 겨울에도 얼지않고 끊임없이 솟아나왔으며, 우물가에 철새들이 많이 몰려들곤 했었다고 한다. 지금 은 도로가 나있어 그 자취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 옻고개·옥고개 영통 1049-2번지 근처에 있으며, 신명 초등학교에서 금융 연수원으로 넘어가 는 고개이다. 예전에는 영통 지역과 용인군 하갈리를 연결하던 고개였다. 근처 에 옻나무가 자생하고 있어서‘옻고개’란 이름이 붙었고,‘옥고개’란 이름은 옻고개가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이 고개길은 1954년 신갈 저수지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그 곳에 있었던 옹기점들이 물건을 수원으로 내다 팔러 가는 지름길로 이용었다고 한다. 서낭당도 이 고개에 있었다고 한다. ⊙ 옻우물 독침산 북쪽의 논 가운데에 있었던 우물이었다. 논 가운데서 물이 솟아났다는 특이한 우물이었다. 15여 년 전에 삼성 생명에서 노인 복지 회관 건립을 위하여 논을 메워 지금은 없어졌다. ⊙ 외꼬지 반야사에서 남쪽으로 500m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목장집 부근을 말한다. 목장이 생긴 것은 20여 년 전이라고 하는데, 목장이 들어선 다음부터‘외꼬지’ 라고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름은, 큰말을 중심으로한 영통 지역에 서 외따로 떨어진 곳이라 해서 붙여진 것이라 전한다. ⊙ 웃말·동삿말 신나무실 남서쪽에 있었던 마을이다.‘웃말’이라는 이름은 신나무실 사람들 이 자기 동네보다 위에 있다고 해서 붙인 것이라 한다.‘동삿말’이라고도 불린 다. ⊙ 원수 고개 원천동 산 88번지와 산89번지 일대에 있는 고개이다. 뒷골, 황골 지역과 원천 지역을 연결해 주던 고개이다. 이 고개는 큰말이나 뒷골 사람들이 수원으로 장 을 보러 나가는 길에 황골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삼성 전자 방향을 거쳐 원천동 으로 갈 때 이용하던 길이었다. 현재 열병합 발전소로 올라가는 길목에 이 고개 가 있다. 이 고개의 이름 유래는 서로 비슷하기는 하지만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 다음의 세 이야기가 조사되었다. ㉠ 이 곳에는 상인들이 많이 지나 다녔었다. 특히 베 장사가 많았는데, 도둑들 이 베 장사들을 노리고 온갖 술수를 다부렸다고 한다. 산 속에 숨어 짐승 소리 를 내면서 마치 산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하면, 베 장사들이 안심하고 지나가 다가 도둑에게 베를 모두 빼앗겼던 것이다. 이렇게 베를 빼앗긴 장사꾼들이 많아 서, 이 후로 이 고개를‘원수 같은 고개’라고 하여 원수 고개라 부르게 되었다 고 한다. ㉡ 옛날 이 고개 입구에는 집이 한채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소를 몰고 이 곳 을 지나가다가 날이 저물면 종종 그 집에서 숙박을 하였다. 그런데 그 집 주인 은 이른 새벽이 되기도 전에 닭 울음 소리를 흉내내어 숙박하는 사람들이 채 날 이 새기도 전에 고개를 넘어가도록 속였다. 그리고 어두운 고개길을 넘어 가는 사람들의 뒤를 쫓아가, 그들을 죽이고 소와 재물 등을 빼앗았다. 이러한 까닭으 로 이 고개는‘원수의 한이 서린 곳’이 되었고, 고개 이름도 이에따라 원수 고 개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 한글학회에서 펴낸 『한국지명유래총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양 지 고을에 사는 김씨가 남양장에 가서 소를 사려고 이 고개를 지나다가 날이 저 물어 주막에서 자다가 주막 주인에게 살해되었는데, 그 뒤로는 이 주막에서 자 는 장사꾼이 많이 죽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원수 고개라는 지명이 생겼다 고 전한다. ⊙ 영통(靈通)·염통 ‘영통’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신령스러운 것과의 연관을 드러내는 여러 이야 기가 전한다. 우선, ‘영(靈)이 통(通)한다’고 하여 영통이라고 하였다는 단편 적이면서도 직접적인 이야기가 있다. 또한 안영통에서 뒷골로 넘어가는 구렁굴 고개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을 이 곳에 살던 만신이 밤낮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 노인은 나타났다가도 금방 사라지고, 보였다가 없어지기도 하여 동네 사람들 모두가 산신령이 나와서 돌아 다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산신 령이 통한다는 의미에서 영통이라 이름을 붙였다고도 한다. 청명산 정상에 있었 던 절에 고려 시대 보물이 묻혀있었는데, 그 보물이 영험스러운 물건이라 신령스 러운 기운이 감돌아 영통이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영통은‘염통’이라고 도 불리는데, 이는 지형이 염통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 은행나무골 영통에 있었던 마을로, 독침산 북동쪽에 있다. 500여 년 전에 이 곳에 정착한 사람들이 은행나무를 많이 심었던 이유로‘은행나무골’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 다. 현재는 소방서와 경찰청 그리고 삼익 아파트와 벽산 아파트 등이 들어서 있 다. ⊙ 응달말 황골에 속한 마을로 청명산 북서쪽에 있었다. 산 북서쪽에 위치한 관계로 햇볕 이 적게 비추어지는 탓에‘응달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양지말 반대편 마을 에 해당한다. ⊙ 응짓말 신나무실의 북쪽에 있었던 마을이다. 양지말 사람들이 붙인 마을 이름으로, 자 신들의 동네보다 햇빛이 적게든다고 해서 붙인 것이다. 실제로 이 마을은 신나무 실의 얕은 구릉에 가려 다른 곳보다 햇볕이 적게 드는 지형을 가지고 있다. ⊙ 절골 청명산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반야사 뒤쪽에 있다. 옛날 이 골짜기에 절이 있 었다고해서‘절골’이라 불린다고 한다. ⊙ 절터 청명산 서쪽 절골에 있었던 절의 터이다. 현재 절의 자취는 남아있지 않지만, 청명산 정상에서 신갈쪽 경사면에 널찍한 터가 남아 있다. 이 절은 황룡사라고 전해지는데, 조선 초기의 것으로 보이는 기와 조각들이 다량으로 발견되었다. 아 마 이 지역에 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터 옆에는 직경 1m, 깊이 2m 가량 의 구덩이가 있는데, 아마 절에서 사용하던 우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제그뫼·제기뫼 뒷골 마을 뒷산을 제그뫼 또는 제기뫼라고 한다. ⊙ 중의 우물 청명산 서쪽 절터에 있었던 우물이다. 흔히 청명산 약수터를‘중의 우물’이 라 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중이 판 우물이라고 해서 중의 우물 이라고 불린다는 이야기로 보건대, 이 우물은 현재의 청명산 약수터와는 반대편 에 위치한 절터에 있었던 우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실제 청명산 정상에서 신갈 쪽 경사면에는 널찍한 절터가 있으며, 그 옆에는 직경 1m 내외, 깊이 2m 정도의 구덩이가 보인다. 이것이 아마 중의 우물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추론컨대, 절 이 없어진 후 마을 사람들이 발길이 끊어지면서 반대편에 있는 지금의 청명산 약 수터를 중의 우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 중뚝말·준뚝말 현재 주식 회사 태평양·퍼시픽 콘트롤 등이 있는 일대의 마을이다.‘중뚝말’ 또는‘준뚝말’이라 불리는 이 마을은 옛날 말들이 쉬어가는 간이역이 있었던 곳 이라고 전한다. ⊙ 청명골·청명 마을 영통 960번지에서 1046번지 일대에 있었던 마을이다. 청명산 아래(서쪽)에 있 다.‘청명골’,‘청명마을’등으로 불리는 마을 이름은 청명산(淸明山)에서 유래 한 것으로, 청명산 가까이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는 동신 아 파트, 대우 아파트 등의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 청명산 약수터 청명산 정상부에 위치한 약수터이다. 일반적으로 중의 우물로 알려져 있으나, 절터와는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어 전혀 다른 것으로 생각된다. ⊙ 큰말 본래 영통이 생겼을 때부터 이 곳에 사람들이 살았던 오래된 마을이다. 영통사 와 반야사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큰말’이라는 이름은 영통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 큰우물 자리 원천동 242-2번지 근처에 옛 우물이 있었던 자리이다. 나촌말과 먼내 마을에 서 가장 큰 우물이라 해서‘큰우물’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현재는 성민 기업 등 중소 기업 공장들이 들어서 있다. ⊙ 큰황골 영통 1058 번지 일대와 기흥읍 영덕리 일대에 있는 마을이다. 황골 서쪽에 있 다. 천석꾼이었던 경주 김씨 집안이 살았던 마을이라고 전해진다. 현재는 아파 트 단지가 들어서 있어, 옛 마을의 자취가 거의 사라지고 있다. ⊙ 큰황골산·능골산·태능산 황골의 뒷산으로, 청명산 정상에서 북서쪽에 위치한 높이 112m의 산이다.‘황 골’이라는 마을 이름도 이 산의 형상이 봉황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 야기가 전해진다. ⊙ 피난길 먼내에서 나촌말을 지나 현 삼성 전자에 이르는 길이다. 6·25 전쟁 때 국군 보병이 퇴각했던 길이어서‘피난길’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황골·황곡(凰谷 또는 黃谷) 청명산 동쪽에 있었던 마을이다. 인근 몇 개의 작은 마을들 대부분이‘황골’ 또는‘황곡’이라는 공통된 이름으로 불리는 동시에, 각각 고유한 이름이 따로 있어 주의를 요한다. 황골 또는 황곡은 일종의 대지명(大地名)이고 작은 마을들 의 고유 이름은 소지명(小地名)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 하다. 이 마을의 이름은 마을 지형이 큰 봉황(鳳凰)이 앉아있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것이라 한다. 지형 상 고속 도로 진입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샘말이 봉(鳳)에 해당한다고 한다. 현재 이 마을은 주공 아파트, 벽산 아파트 등의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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